「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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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심미적 사상가다. 그의 사상은 언제나 심미주의의 고운 거름종이를 통과해 맑은 물처럼 흐른다. 그는 아름다움에 심취한 사람이며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의 글에 감탄하는 것도 그 깊은 뜻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글의 아름다움이 먼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진리를 담을 수 없다고 그의 섬세한 문체는 주장하는 듯하다.
그의 심미주의는 전방위적이다. 글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아름다운 글씨를 쓰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이면 아름다움의 성찬이 될 것이다. <처음처럼>은 그의 글과 글씨와 그림이 나란히 놓여 ‘더불어 아름다움의 숲’이 된 책이다. 글만 읽었던 사람들, 글씨나 그림만 보았던 사람들은 이제 짝이 되어 한 권에 오롯이 담긴 그의 심미적 정신을 즐겁게 음미할 수 있게 됐다.
독자의 반응은 맹렬하다. 1월 말 출간된 뒤로 판매부수가 한 달 보름 만에 6만부를 넘겼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줄곧 종합 베스트 1위를 지키고 있다. 판매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책을 기획한 양선우 랜덤하우스코리아 팀장은 “그동안 신영복 교수의 책은 386세대라고 하는 30~40대가 주독자층이었는데, 책이 아름다워서인지 20대에서도 독자군이 크게 형성됐다”고 밝혔다. 양 팀장은 “글뿐만 아니라 글씨와 그림도 함께 담긴 책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며 “졸업·입학 시즌이기도 해서 선물용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양 팀장은 책 기획에 얽힌 뒷얘기도 한토막 털어놓았다. “신영복 교수의 ‘나는 걷고 싶다’라는 글도 좋아했고 또 신 교수가 그린 ‘눈사람’ 그림도 좋아했는데, 그게 함께 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사람의 슬픈 눈망울이 글의 뜻을 더 잘 전달해줄 것 같았다. 글과 그림·글씨를 한데 묶는다는 생각이 여기서 나왔다.”
이 책의 어느 글이든 마찬가지지만, ‘나는 걷고 싶다’는 잠언풍의 짧은 글 속에 삶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통찰이 담겨 있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 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너른 마당’이라는 글의 전문은 이렇다. “너른 마당이란 대문이 열려 있는 마당입니다. 대문이 열려 있으면 마당과 골목이 연결됩니다. 그만큼 넓어집니다. 그러나 열린 마당은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소통과 만남의 장이 됩니다. 사람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넓은 마당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머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의 심미주의가 가꾸어놓은 마당의 정원은 화사하고 따뜻하다. 독자마다 그 정원에서 ‘참된 삶’에 대한 지은이의 심미적 깨달음을 함께 얻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예스24에 독후감을 올린 독자(아이디 포임)은 ‘감동이 한동안 떠나지 않는 책’이라며 책의 한 구절을 그대로 소개했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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