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사> 데이비드 톰슨 지음, 이상근 옮김. 까치 펴냄, 2만5000원
잠깐독서 /
로버트 타운은 영화 <차이나타운>(1974)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할리우드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다. 그는 자신의 출세작이 될 이 영화의 시나리오 저작권을 파라마운트사에 팔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는 시나리오를 손보는 작업에서 타운이 공들였던 대부분의 상황을 바꾸고 결론까지 뒤집어 버렸다. 제작사는 나중에 시나리오 수정에 불만을 가진 타운이 촬영현장에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차이나타운>은 흥행과 비평에서 두루 성공했지만 내용도, 저작권도 자신의 품을 떠난 영화는 더 이상 그의 것일 수 없었다.
미국의 영화학자이자 영화 비평가인 데이비드 톰슨은 할리우드 100년사의 방대한 기록을 어떻게 보면 대단치도 않은 로버트 타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한 시나리오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빼앗기고 불행해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작가의 권리를 ‘자연스럽게’ 빼앗아가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왔는가를 밝혀내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할리우드 영화사>는 연대기별로 사건과 작품을 엮는 영화사 책들과 달리 다양한 인물과 사건, 그것들을 아우르는 당시의 정치문화적 환경, 심지어 날씨같은 물리적인 요건까지 엮어서 할리우드의 탄생과 성장을 극적으로 풀어놓는다. 지은이는 산업적 지표와 주요 영화인들을 둘러싼 내부 정치, 탐욕스러운 성장 뒤의 어두운 그늘, 그리고 시대별 주요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며 재치있는 촌평을 날린다.
책을 읽다 보면 할리우드의 과거를 최근의 충무로가 따라가는 듯한 모습도 종종 발견된다. 40년대 배우들의 에이전시였던 엠씨에이(MCA)가 막강한 스타파워를 가지게 되면서 직접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에 나서게 된 사례는 2,3년 전부터 큰 논란을 낳았던 매니지먼트사의 제작 및 지분 참여 문제와 꽤 닮았고, 80년대 미국 교외에 세워지기 시작한 멀티플렉스가 영화 관람문화를 놀라울 만큼 바꿔놓은 것도 지금의 한국 상황과 유사하다.
그 밖에도 가난한 이민자에서 영화산업의 선구자가 된 루이스 메이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 등 영화계의 거물들이 돈과 술과 여자에 눈이 멀어 파멸하는 과정이나, 2류 배우 때부터 보여 준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인 면모와 그로 인한 성공 등 흥미로운 할리우드 후면비사들도 풍부하게 담겨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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