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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차별’ 해소? 의식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라

등록 2007-08-03 19:20수정 2007-08-03 19:23

김용석 / 영산대 교수
김용석 / 영산대 교수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박재동 외 〈십시일反〉

혹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홍보’는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당연히 ‘널리 알린다’는 의미에서 그렇고, 영화·애니메이션·만화같이 대중성 높은 예술 장르의 표현 방식을 취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10인의 작가가 참여한 만화책 〈십시일反〉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반(反)’ 자가 들어간 특이한 제목이 시선을 끄는데, 기획편집자들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십시일反〉. 열명이 모여 만든 책 한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도다.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이 되었다. 만화가들이 한술 한술 퍼담아 뚝딱 밥 한 그릇을 만든 셈이다. 이 밥 한 그릇으로 ‘인권’에 좀더 가까워지고, 일상 속에서 지혜롭게 차별과 차이를 가려낼 줄 아는 ‘인권의 감수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감수성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지독한 편견과 굳어버린 습관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십시일반〉은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을 들추어낸다. 가슴 뭉클하고 때로는 오래 주시하지 못할 정도로 전율을 일으키는 이미지들은 여성, 가난한 사람,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 그리고 혹자는 ‘아직도!’라고 할지 모를, 검은 피부색을 지닌 ‘인종’에게 가해지는 음흉하고 억압적인 차별을 고발하고 있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는 이 점에서 특별한 소통력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 고발의 메시지들을 좀더 세밀히 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의 심층을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만화책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이 위에서 나열한 ‘부류’의 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의 문제가 드러나고 인권 감수성의 향상이 촉구된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너무도 명백한 인권 문제다. 역사적으로, 자기와 다른 인종을 아예 사람의 범주에 넣지 않는 인식적 차별이 있던 때가 있었다. 신대륙 개발이라는 서구인들의 식민화가 진행되던 시대에, 그들은 끔찍하게도 이런 인식적 차단으로 근본적 인륜의 문제를 은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람 취급’의 문제를 인권의 핵심에 놓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 그것은 차별을 고발하는 데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차별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타인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을 넘어서 ‘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는 친밀한 인식과 구체성을 가져야만, 타인의 문제, 곧 너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를 사랑의 차원으로 이끄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상대를 ‘한 사람’으로 본다. 물론 개인적인 애정을 품듯이 사회적 연대감을 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자칫 차별받을 수 있는 사회적 동료를 대해야 한다. 곧 인간관계의 개인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그에게 ‘사회가 지어준 이름’인 장애우, 트랜스젠더, 빈자, 수입 노동자, 흑인, 백인 등의 껍질을 벗겨 버리고 만날 수 있다. 장애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든가 트랜스젠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인식하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인권 감수성이며, 이는 또한 나 자신에게도 엄청난 윤리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누군가 인권 감수성의 윤리적 가치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윤리란 사회적 불순물을 정화하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인간의 의미이다. 고인 물이 되어 버린 관습,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들을 부르르 떨쳐 버리고 ‘의식의 알몸 되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된다.

고대로부터 소중한 철학적 가르침이었던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틀과 모든 색깔과 모든 덧붙임과 모든 사회적 이름과 훈장을 떨쳐 버리고 나의 알몸을 발견하는 일이다. 너 자신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나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네게 덧씌워진 것이나 네게 색칠된 것이 아닌, 너의 황홀 그 자체를 볼 수 있다. 윤리란 자기 주체화 작업이자, 동시에 타자의 주체화 작업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차별을 넘어서는 윤리적 가치가 있다.

김용석 /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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