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연세대 상남관 2층 로즈룸에서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자 및 국내외 학자들이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 제공.
자칫 재앙 가져올 오키나와·양안문제 등 ‘동아시아 운명공동체’ 공동의 진로 모색
보수화·민족주의 성향 높아진 젊은 세대 어떻게 진보로 추동할 것인가 함께 고민
보수화·민족주의 성향 높아진 젊은 세대 어떻게 진보로 추동할 것인가 함께 고민
안과 밖/한·중·일 비판적 잡지 편집인 심포지엄 참관기 지난 9일부터 이틀간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창비·세교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 행사 참관기를 이욱연 서강대 교수가 보내왔다.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은 <창작과비평>이 생일 잔칫상에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인들을 초대하여 지난 9일과 10일 회의를 연 것이다. 주제는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이었다. 회의를 마련한 창비 주간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지금 동아시아 각국에서 진보란 무엇인지, 동아시아가 갈수록 운명공동체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지금 왜 동아시아는 진보와 운동성을 다시 묻는 것일까. 진보가 그만큼 기로에, 혹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더욱 그러하고, 그래서 창비가 다시 운동성 회복을 들고 나오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진보의 위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가히 동아시아의 공안(公案)이었다. 회의에 참가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창비가 걸어 온 길을 빗대어, 한국의 진보 세력들이 과거보다 좋은 것도 먹고 살기는 나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고통스러워졌다고 했다. 일본 <세카이> 편집장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가 이남주의 진단을 이어 받아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골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대, 이것이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일갈했다. 나는 그가 일본을 빗대 한국에게, 한국 학생운동 세대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진보의 위기는 보수 때문이 아니라 진보 내부에서 왔거나, 오고 있다. 창비 40돌 잔칫상에 초청
아마도 그래서 자성하자고, 진보에 대해, 운동에 대해 다시 고민하자고 모인 것이고, 새로운 기운도 보였다. 창비가 한국의 변혁운동을 새롭게 고민하면서 최근에 내놓은 ‘변혁적 중도주의’론을 동아시아 비판 지식인들 앞에 선보인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일본 <임팩션>의 편집위원인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朗)는 창비가 제기한 운동성 회복 주장이 인상깊다고 했다. 새롭게 운동성을 고민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의식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77학번으로, 유명한 ‘산리즈카 투쟁세대’다. 일본 정부가 토교 인근 산리즈카 농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지금의 나리타공항을 세우자, 개항을 앞둔 공항 관제탑을 점령하여 반대투쟁을 벌였다. 그도 그 투쟁대열의 일원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마주 앉은 술자리에서 그는 나직이 이른바 ‘훌라송’을 불렀다. 우리 것과 가사만 달랐다. 그리고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들으면서 노래가 참 슬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우리는 어짜자고 그렇게 슬픈 노래들을 그리 즐겨 불렀을까. 일본 학생운동 세대들이 만드는 <임팩션>은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공세 앞에서 청년 실업에 몰리면서 불안정해진 젊은 세대에 주목하여 새로운 운동형태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프리캐리아트(Precariats:불안정층)’란 신조어를 만들어 ‘만국의 프로캐리아트여! 공모하라’는 특집을 내기도 했다. 프리캐리아트라는 말은 ‘precarious’(불안정한)에서 온 신조어다. 중국의 왕후이(汪暉)는 칭화대에 마르크스주의 연구회라는 학생 동아리가 생겼다면서 중국 대학생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지만, 한·중·일 젊은 세대들이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 속에서 가혹한 경쟁에 몰리고 있고, 그런 가운데 보수화되고 민족주의 성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은 한결같았다. 동아시아 진보운동의 혈맥이 세대를 넘지 못하고 갈수록 단절되어 간다고 안타까워했고, 그래서 프리캐리아트 운동이 화제가 됐다. 청년세대들을 어떻게 진보의 길로 추동할 것인가, 동아시아 진보진영 공동의 고민이었다. 중국은 <민젠>(民間)이란 잡지가 생겨났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기운의 상징이었다. 중국 시민사회 건설과 체계적인 NGO(비정부기구)활동을 펴고 관련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광저우에 있는 중산대학(中山大學)에 ‘시민사회센터’가 만들어졌다. <민젠>은 그 기관지로, 중국에서 극히 드문 순수 민간잡지였다. 중국에서 시민운동이 싹트면서 새로운 변혁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여실한 증거였다. 편집위원인 주젠깡(朱健剛)은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 사회활동가들 사이에서 필독서라고 했고, 한국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경험에서 많이 배우고 싶다면서 회의가 끝난 뒤 성공회대로 한 수 배우러 간다고 했다. <대장금>과 함께 한국 민주화의 경험이라는 또 하나의 한류가 동아시아에 흘러가고 있었다. 한국 민주화운동 중국서 본보기 오키나와는 일본인가? 오키나와에서 순전히 자원봉사자들 힘만으로 발행하고 있는 <케시까지>(ケ一シ風)의 오카모토 유키코(岡本由希子)가 좌중에 도전적으로 물었다. 동아시아 내부의 억압체계를 문제삼는 것이어서 그만큼 민감한 물음이었다. 오키나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오키나와 활동가들이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미군기지 이전, 미군 철수 요구는 동아시아에서 부재하면서도 편재하는 동아시아의 미국성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부르지 말라는 요구, 적어도 일본인으로 부르기 이전에 오키나와인으로 불러달라는 요구는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변 소수민들을 강제로 하나의 국가에 통합시켰던 동아시아 근대사에 시비를 거는 일이다. 오키나와 문제는 동아시아의 전체에 걸려 있고, 동아시아 문제의 상징이다. 그러기에 대만(타이완)의 천광싱(陳光興)이 오카모토 유키코에게 동아시아 차원에서 오키나와 문제를 사고할 때 어떤 해법이 가능하냐고 물은 것은 당연했다. 오키나와와 일본 사이의 문제는 대만과 중국대륙 문제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천광싱과 <타이완 사회과학 계간>의 천이쭝(陳宜中)은 대륙과 대만 사이의 양안문제를 풀 때 동아시아적 시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만 독립만을 생각하여 일을 벌이면 동아시아 전체에 전쟁을 초래할 수 있어서 동아시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라고 했다. 양안문제는 동아시아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의 해법은 무엇일까? 오카모토 유키코는 천광싱의 질문에 앞으로 그 답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그 고민은 실은 오키나와인 만의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모두의 것이다. “회의보다 술 한잔” 단절 극복 제의 천광싱은 한국에 오면 집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는 일본에 가도 중국대륙에 가도 싱가포르에 가도 그럴 것이다. <세카이>의 오카모토 아쓰시는 앞으로 국가의 틀을 넘어서 동아시아 시민으로 거듭나자고 했는데, 천광싱이야말로 참으로 동아시아 시민이고, 동아시아 무정부주의자이다. 한국에 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이번에도 백세주를 마시고, 막걸리를 마셨다. 동아시아의 연대와 소통을 위해서는 감정의 연결이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연대보다 중요하고, 술 마시는 것이 회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동아시아 관련 회의 때마다 절감하는 것은 동아시아 내부가 식민과 냉전으로 인한 단절과 갈등을 겪으면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이질화되었고, 그래서 소통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동시통역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소통의 어려움이었다. 문제는 개념 자체가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의 다른 역사 경험과 현실로 인한 역사와 문화 같은 컨텍스트의 차이다. 동일한 단어라고 해도 각국의 컨텍스트 속에서 서로 다르게 이해되고 있었다. 가령 진보라고 하더라도 각자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어떤 이는 진보를 곧장 사회주의 혁명 프로그램과 연결시키기도 했고, 어떤 이는 발전과 같은 개념으로 쓰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 한국의 진보, 특히 변혁적 중도주의와 근대 지향과 근대 극복을 내세우는 창비의 진보 프로그램은 다른 동아시아 문맥에서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공동의 진보의 상을 그린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
이욱연/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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