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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름 없이 부서진 이들 하나하나씩 불러 보자

등록 2006-06-29 19:12수정 2006-06-30 16:45

부산 대연동에는 유엔 묘지가 있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숨진 16개국 병사 2300여명의 유해가 아직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묻혀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도 전쟁을 기념할 때 승자나 영웅을 기리는 데서 전쟁 희생자들도 살필 때가 되었다.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받은 상흔(트라우마)을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부산 대연동에는 유엔 묘지가 있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숨진 16개국 병사 2300여명의 유해가 아직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묻혀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도 전쟁을 기념할 때 승자나 영웅을 기리는 데서 전쟁 희생자들도 살필 때가 되었다.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받은 상흔(트라우마)을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전 희생자가 어디 병사뿐인가 세계 유례없는 100만명 민간인 학살
영웅담 벗어나 무고한 죽음의 진실 밝혀 구천을 떠도는 상흔 치유할 때다

안과 밖/한국전 참전 용사의 묘 ‘유엔 공원’에서

부산 대연동에는 유엔묘지가 있다. 한국전쟁 참전 16개 국가들의 병사들이 아직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묻혀 있는 곳이다. 6월6일에는 어김없이 주한 외국대사들과 외국인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6월25일에는 대통령과 부산 시장이 보낸 화환이 놓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에 보낸 화환도 며칠 동안은 거기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제 명칭은 ‘유엔 묘지’가 아닌 ‘유엔 공원’으로 바뀌었다. 저녁이면 잠시 들린 연인들한테마저 관리인들이 하도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유엔군 병사들은 차단된 공간에서 조용히 휴식하고 있다.

한때 김광균 시인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이국 병사들이 너무 안타까워 다음과 같이 노래한 적이 있다. ‘꽃 하나 피지 않고 한포기 풀도 없는/ 거칠은 황토 언덕에/ 이미 고토에 돌아갈 수 없는 몸들이 누워/ 수정 십자가 떼 바람에 통곡하는 수영앞바다’

1951년 1월부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엔군 병사들의 유해를 이곳으로 이전할 당시에는 황량한 황토밭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조경과 잔디를 가꾼 수준이 국제 공원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부산시는 2005년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를 준비하면서 여기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어 장소도 더 확장했고 잔디공원과 조각공원도 조성해 놓았다.

유엔 묘지에는 1954년까지만 해도 약 1만1천명의 유해가 있었으나 부유한 국가들이나 가족이 있는 병사들의 유해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연고가 없는 병사들, 터키처럼 가난한 국가의 병사들, 강대국 병사로 참전했지만 식민지 출신이거나 용병의 냄새가 너무 짙은 2300여 병사들은 아직도 고단한 육신을 한국 땅에 누이고 있다. 미군은 한국전에 160만명이 참전하여 3만4000여 장병들이 숨졌는데, 유해들을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하고 현재는 36기만 부산에 남겨 두고 있다. 프랑스 대대에는 3760명이 근무했고 그 중 262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의 유해들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44구만 부산의 유엔 묘지에 방치돼 있다.

돌아가지 못한 무연고 병사 ‘안식’


모하메드 라스리 중사. 유엔군 프랑스대대. 1951년 3월5일. 그의 묘비명에 십자가 대신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슬람 신자이며 십중팔구 당시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출신일 것이다. 작년에 유엔 공원을 방문했던 프랑스 대사 파스칼 오리는 프랑스 군인들은 당시 용병들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전쟁은 사실 전 세계인들로부터 까맣게 잊혀진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에 가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조국을 위한 애국이라는 점에서나 군인으로서의 명예라는 점에서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전쟁기념관에는 한국전 참전 육·해·공·해병 병사를 의미하는 실물 크기의 20~30명 조각상들이 무장을 한 채 서 있다고 한다. 한국전이 승리한 전쟁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참전 이유도 불투명하여 내세울만한 전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엔군으로 참전한 자국의 병사들이 아직 한국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르고 있고, 현재 유엔도 부산에 유엔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유엔군이 너무 고마워 우리는 10월24일을 유엔의 날로 정해 기념했지만 이 공휴일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유엔군 병사들은 그래도 한국인 민간 희생자들에 비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죽음이 기억되기에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랫동안 우리는 전쟁 영웅들을 추모하고 숭배해 왔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초래했건 간에 승리로 이끈 장군들과 제독들의 동상을 세웠고, 전사한 장교들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며 그들의 영웅심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교과서에서 가르쳐 왔다. 반면 이름 없는 병사들을 ‘무명용사’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조그마한 기념비를 하나 세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무수한 민간인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재판도 없이 비무장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전쟁을 전후하여 국가가 그렇게 많이 학살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경찰과 한국군, 북한군, 유엔군은 대략 100만명의 한국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국가가 주도한 범죄로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국가가 당연히 배상도 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이 범죄는 당연히 반인륜범죄에 해당한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킬링 필드’를 논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일본의 전범에 대해 항의하고 규명하고 배상을 요구할 있겠는가? 더구나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조명은 한국전쟁이 국제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작업이다. 이제 더 이상 내부의 일이라는 일로 덮어둘 수 없게 되었다. 독일과 일본, 스페인이 자국에서 자행된 일들을 더 이상 국내의 일로 우길 수 없게 되었듯이, 우리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와 직결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세울 수도 발언권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민간 희생자에 명예회복·배상을

이제 전쟁을 대하는 세계인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영웅에서 무명으로, 무명에서 전쟁으로 고통 받은 희생자들로 기념 대상이 점차 옮겨가고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올리비에 비비오르카(Olivier Wieviorka)는 그동안 역사가들이 손을 놓고 있던 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작업들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6월 초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역사학대회(한양대)에서 보고한 바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계기로 보고, 그 동안 연합군 쪽 시각에서 조명되고 찬양 일변도로 평가된 작전이었다. 미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을 기념하고 미국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작한 바 있다.

당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이전에 이 지역의 독일군 진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포탄을 퍼부었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피해도 엄청났다고 한다. 더구나 이 지역에 상륙했던 미군들이 저지른 여러 만행들, 프랑스 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폭행, 약탈과 상점에서의 물건 탈취 같은 사례들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언제나 승리한 작전으로만 알려졌고 이 지방 민간인들의 피해 목소리는 오랫동안 묻혔다고 한다. 이제 역사학자들은 노르망디 지방 주민들의 이중의 기억, 승전과 고통의 이 복잡한 기억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전쟁연구가 민족이나 승리한 군대, 장군들의 작전에서 어두운 부분들, 탈영병, 수많은 민간 희생자들에 대한 연구, 군인들의 비인도적 행위 등으로 옮겨 전쟁의 진정한 모습을 재현하고 특히 희생된 자들의 상흔을 치유할 것을 제의한 바 있다.

인천 상륙작전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한국에서의 미군들의 만행은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미군이 콤플렉스를 지닌 유럽이 아닌 ‘미개국’이지 않았던가! 미국 흑인병사들이 트럭을 타고 서울 시내를 이동하면서 환영 인파들을 향해 오줌을 내갈기는 장면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도 전쟁을 기념할 때 승자나 영웅을 기념하는 데서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도 기념할 때가 되었다.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받은 상흔(트라우마)을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전쟁의 횡포 속에서 부당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거나,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는 일은 그만하자, 민족의 앞날을 위해 국민 단합을 중시하자는 친일파와 대독협력자, 반공주의자들의 주장은 더 이상 반복하지 말기로 하자.

남북 구분 말고 유해발굴 나서야

이학수/부산교육대 강사·역사이해
이학수/부산교육대 강사·역사이해
군인들의 경우 남북한 군을 구분하지 않고 유해발굴 작업을 해야 할 것이고,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해는 발굴하여 유족들에게 돌려주거나 위령탑 건립으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편히 안치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강제로 북에 끌려간 인사들에 대해서도 생사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사망한 모든 사람들의 유해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극히 고통스런 상황에서 탈영을 하다가 군법으로 처형되었거나 병역을 기피하여 처벌된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처했던 특별한 상황들을 고려하여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 또한 중국군의 유해 문제도 해결해야 할 때가 왔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면서 통일을 향해 가는 도정에서 치러야 할 당연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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