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를 택한 미국은 1년 열두달 자원입대자를 모으느라 백방으로 묘수를 내야 한다. 특히 사망자가 속출하는 전쟁시에는 입대 희망자가 급감해 고민이다. 그래서 모병은 국방전략의 사활적 일부가 되어 있다. 그러나 편법까지 동원한 무리한 수법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비난과 저항을 부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미국 반전그룹이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이라크전에 파병됐다 전사한 미군들의 관과 십자가 모형을 설치해 놓고 추도시위를 벌이는 모습. 산타모니카/ AFP 연합
군사대국의 병력난…모병에만 연 2조원 대학등록금 보조에 수만달러 수당 등
갖은 미끼로 군대 ‘취직’ 회유하지만 알고보면 전투 나갈때만 적용되는 목숨값
갖은 미끼로 군대 ‘취직’ 회유하지만 알고보면 전투 나갈때만 적용되는 목숨값
안과 밖
9월 초순에서 중순은 미국에서 향학열의 계절이다. 모든 교육기관이 이때 새 학년을 시작한다. 문방구는 성수기를 맞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부모는 취학 관련 서류를 잘 살펴보고 꼼꼼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보스턴 교육청에서 날아온 안내서를 읽고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해서 학교에 보내야 했다. 미국 제도에 낯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네 페이지짜리 서류를 훑어보던 중 다음과 같은 내용에 시선이 갔다. “고등학생 해당: 군당국 및 대학교육 기관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 여부. 연방정부의 예산을 지원받는 모든 공립학교는 ‘어린이ㆍ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에 의거하여 모병당국과 대학기관에 고등학생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 이 정보의 제공에 반대하는 학생 또는 학부모는 아래 양식에 기명날인해서 학교에 제출할 것.”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사람이 신청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사람이 면제를 받아야 한다니 이건 전형적인 강제규정이 아닌가. 나는 서류를 옆으로 밀쳐놓고 이 문제를 좀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잠시면 될 줄 알았던 일이 한나절 이상을 잡아먹었다. 학자의 전형적인 고질병이 도진 탓이다. 우선 이 법이 도대체 어떤 법인지를 찾아보았다. 9·11 직후인 2002년 1월에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연방 공법 107-110호는 속칭 ‘어떤 아이도 뒤처지면 안 된다’법 (No Child Left Behind Act)이라고 불린다. 이 교육법은 무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길고 방대한 문서다. 그런데 교육법이 어떻게 군과 연관이 있는가? 법조문에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500페이지를 넘기고 거의 기진맥진해졌을 때쯤 제9장 일반조항 내 기타조항 9528조 1항에 ‘학생에 대한 모병정보 접근 규정’이라는 문제의 구절이 숨어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 조항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 정보, 군에 제공’ 논란
잘 알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이다. 올 회계연도의 국방비가 우리 돈으로 440조원 쯤 된다. 후순위 20개국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현역병이 140만, 예비군이 86만명이다. 군대에는 가고 싶은 사람만 간다. 국방을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니 일견 민주적인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군입대를 놓고 고민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델이다. 그런데 군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모병제는 일상적인 골칫거리다. 1년 열두달 자원입대자를 모으느라 백방으로 묘수를 내야 한다. 특히 전쟁시에는 입대 희망자가 줄어들어 고민이다. 그래서 모병은 국방전략의 사활적인 일부가 되어 있다.
9월22일치 <뉴욕타임스>에도 이 문제가 머릿기사로 실렸다. 현재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약 14만명 수준. 럼스펠드의 원래 복안대로라면 올해 초 쯤에는 상황이 다 정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요구병력 예상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년이 되어도 15개 여단 병력이 계속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원자는 늘지 않으니 주 방위군을 전투에 차출해야 하는데 순환근무 원칙 등 여러 기술적 문제가 있어서 이 역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군사대국이 병력난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지역 모병사무실에 분기별 할당량을 내려 보내 ‘영업실적’을 독려하느라 난리다. 매년 모병에만 우리 돈으로 2조원을 쓰고 있다. 법적으로 만 17살이 되면 부모 동의하에 입대가 가능하니 이런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이겠는가. 내가 사는 동네에도 군 모병 상담센터가 있다. 신문을 사러 편의점에 갈 때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무실에 현역군인 같이 생긴 젊은이가 어린 ‘동네 후배’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곤 한다. 한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지만 흰머리가 만만치 않은 중년의 동양인을 수상하게 볼까봐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병을 대행하는 전문회사들도 생겼다. 국방도 외주·하청을 준 셈이다. 이들의 안내문을 읽어보면 정말 입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은 옛말이고 신세대의 ‘합리적 선택’과 ‘경력관리’를 강조한다. 입대 의사를 밝히면 4만달러까지 특별수당을 지급한다, 군에서 배운 기술로 사회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군경력자의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매년 30일간 유급휴가를 준다, 각종 세금공제 혜택이 있다, 매년 2만달러까지 보너스를 지급한다, 모든 군인들 중 80% 이상이 비전투 병과에 속한다 (그러니 죽을 염려는 말라), 보통사람 90% 이상이 기초훈련을 통과한다, 기초훈련만 마쳐도 바로 E-2 호봉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성도 환영한다, 등등. 이렇게 좋은 조건이면 군대에 ‘취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약과다. 가장 중요한 당근은 ‘대학교육’의 기회제공에 있다. 미국대학은 각종 장학혜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돈이 든다. 학생 일인당 평균 몇 만달러씩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기 마련이다. 아예 대학갈 엄두를 못 내는 학생들도 많다. 명문 사립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주립대학, 공립대학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러한데 입대만 하면 최고 7만달러까지 등록금을 보조해 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솔깃한 말인가. 모병 사무실 ‘영업실적’ 독려 그런데 과연 미국 군대에 ‘입사’하는 것이 이렇게 좋기만 할까? 군당국의 선전을 파헤쳐 모병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시민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위의 당근들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특별수당, 보너스, 특혜 등은 액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라거나 타내려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예컨대, 현역으로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하면 백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미리 내놓고 4년제 대학을 마쳐야 한다. 3년 내에 전역하거나 불명예 제대하면 보증금이 날아간다. 또한 훈련 성적이 좋아야 하고 병과도 자기선택이 아닌 강제배정 방식을 택해야만 장학금 신청자격이 생긴다. 즉, 실전에 나가겠다고 해야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군에서 배운 기술을 사회에서 써먹을 가능성은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참전용사 노숙자연맹’(NCHV)이라는 단체는 전국의 노숙자 중 약 3분의 1이 참전용사일 거라고 추산한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다 각종 약물·알콜 중독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가족과 같은 사회적 지지망이 와해되어 쉽게 길거리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군에 갈 젊은이가 많겠는가? 그러니 모병담당자가 목표로 하는 집단은 따로 있다. 유색인종, 소수민족, 빈곤층이다. 실제로 전체 군인 중 흑인과 라티노의 비율이 약 40%에 달한다. 전체 인구비율보다 훨씬 높다. 실전에 배치되는 비율은 더 높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군복무 신청서를 작성하는 젊은이들이 흔히 이 문서를 정부와 개인 사이의 계약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청서에서 규정한 지위, 급여, 대우, 특혜, 의무 등은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다”고 하니 이건 순전히 일방적인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부시 정부의 모병정책은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2002년 12월 ‘어린이ㆍ청소년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에 조인하였다. 하지만 교육법의 학생정보 접근 허용조항이 ‘선택의정서’에서 정한 18살 미만 어린이ㆍ청소년의 병역금지 규정과 상충된다는 점이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이제는 아예 교육단체들까지 나서서 펜타곤과 일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 아이에 손대지 말라’라는 단체는 정보제공 반대서류 서식을 온라인에서 나눠주고 있다(www.leavemychildalone.org). 전쟁과 평화 근본적 성찰 필요
나는 아이의 서류를 다시 찾아 반대란에 서명을 해서 학교로 보냈다. 하지만 야근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 자식의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깜빡 잊은 가난한 유색인종 부모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들은 얼마 후 자기 아이가 군에서 보낸 화려한 컬러 광고전단을 읽고 군에 입대하겠다고 고집을 피울 줄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징병제의 문제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모병제가 대안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모병제 역시 사회-정치적 조건의 테두리 내에서 실행되고 왜곡됨을 이 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피하면 군 문제 논의가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9월22일치 <뉴욕타임스>에도 이 문제가 머릿기사로 실렸다. 현재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약 14만명 수준. 럼스펠드의 원래 복안대로라면 올해 초 쯤에는 상황이 다 정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요구병력 예상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년이 되어도 15개 여단 병력이 계속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원자는 늘지 않으니 주 방위군을 전투에 차출해야 하는데 순환근무 원칙 등 여러 기술적 문제가 있어서 이 역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군사대국이 병력난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지역 모병사무실에 분기별 할당량을 내려 보내 ‘영업실적’을 독려하느라 난리다. 매년 모병에만 우리 돈으로 2조원을 쓰고 있다. 법적으로 만 17살이 되면 부모 동의하에 입대가 가능하니 이런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이겠는가. 내가 사는 동네에도 군 모병 상담센터가 있다. 신문을 사러 편의점에 갈 때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무실에 현역군인 같이 생긴 젊은이가 어린 ‘동네 후배’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곤 한다. 한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지만 흰머리가 만만치 않은 중년의 동양인을 수상하게 볼까봐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병을 대행하는 전문회사들도 생겼다. 국방도 외주·하청을 준 셈이다. 이들의 안내문을 읽어보면 정말 입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은 옛말이고 신세대의 ‘합리적 선택’과 ‘경력관리’를 강조한다. 입대 의사를 밝히면 4만달러까지 특별수당을 지급한다, 군에서 배운 기술로 사회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군경력자의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매년 30일간 유급휴가를 준다, 각종 세금공제 혜택이 있다, 매년 2만달러까지 보너스를 지급한다, 모든 군인들 중 80% 이상이 비전투 병과에 속한다 (그러니 죽을 염려는 말라), 보통사람 90% 이상이 기초훈련을 통과한다, 기초훈련만 마쳐도 바로 E-2 호봉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성도 환영한다, 등등. 이렇게 좋은 조건이면 군대에 ‘취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약과다. 가장 중요한 당근은 ‘대학교육’의 기회제공에 있다. 미국대학은 각종 장학혜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돈이 든다. 학생 일인당 평균 몇 만달러씩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기 마련이다. 아예 대학갈 엄두를 못 내는 학생들도 많다. 명문 사립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주립대학, 공립대학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러한데 입대만 하면 최고 7만달러까지 등록금을 보조해 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솔깃한 말인가. 모병 사무실 ‘영업실적’ 독려 그런데 과연 미국 군대에 ‘입사’하는 것이 이렇게 좋기만 할까? 군당국의 선전을 파헤쳐 모병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시민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위의 당근들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특별수당, 보너스, 특혜 등은 액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라거나 타내려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예컨대, 현역으로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하면 백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미리 내놓고 4년제 대학을 마쳐야 한다. 3년 내에 전역하거나 불명예 제대하면 보증금이 날아간다. 또한 훈련 성적이 좋아야 하고 병과도 자기선택이 아닌 강제배정 방식을 택해야만 장학금 신청자격이 생긴다. 즉, 실전에 나가겠다고 해야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군에서 배운 기술을 사회에서 써먹을 가능성은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참전용사 노숙자연맹’(NCHV)이라는 단체는 전국의 노숙자 중 약 3분의 1이 참전용사일 거라고 추산한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다 각종 약물·알콜 중독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가족과 같은 사회적 지지망이 와해되어 쉽게 길거리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군에 갈 젊은이가 많겠는가? 그러니 모병담당자가 목표로 하는 집단은 따로 있다. 유색인종, 소수민족, 빈곤층이다. 실제로 전체 군인 중 흑인과 라티노의 비율이 약 40%에 달한다. 전체 인구비율보다 훨씬 높다. 실전에 배치되는 비율은 더 높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군복무 신청서를 작성하는 젊은이들이 흔히 이 문서를 정부와 개인 사이의 계약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청서에서 규정한 지위, 급여, 대우, 특혜, 의무 등은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다”고 하니 이건 순전히 일방적인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부시 정부의 모병정책은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2002년 12월 ‘어린이ㆍ청소년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에 조인하였다. 하지만 교육법의 학생정보 접근 허용조항이 ‘선택의정서’에서 정한 18살 미만 어린이ㆍ청소년의 병역금지 규정과 상충된다는 점이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이제는 아예 교육단체들까지 나서서 펜타곤과 일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 아이에 손대지 말라’라는 단체는 정보제공 반대서류 서식을 온라인에서 나눠주고 있다(www.leavemychildalone.org). 전쟁과 평화 근본적 성찰 필요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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