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드라마 ‘대조영’을 통해서 본 영웅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과 희극이 드라마(drama)라고 불리게 된 것은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실제 행동하는(dran) 것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뒤에 오랜 세월 동안 ‘드라마’는 극 또는 연극을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라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텔레비전 연속극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대중문화의 파급효과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서도 이른바 ‘대하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 김종선 연출의 〈대조영〉이 지난 주말에 막을 내렸다. 〈대조영〉은 1년 반 가까운 기간에 걸쳐 역사관 논쟁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는데, 그 모든 것은 제쳐두고 나는 여기서 이야기 구성의 의미와 재미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고자 한다.
〈대조영〉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한편, 한 인간이 어떻게 영웅으로 성장해 가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적·정치적 해석을 제쳐놓고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대조영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어가는 것은 바로 다양한 ‘삼각관계’이다. 이것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서사의 견인차 구실을 한다. 또한 대조영이 자신을 얽어매는 삼각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가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일치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대조영은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승리자이기도 하고, 때론 미묘한 삼각 구도에서 실리를 취하기도 하며, 삼각의 갈등에서 현명한 균형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삼각관계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역사적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섞여 있으나, 그 인물들 사이의 삼각관계는 모두 허구로 구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극 〈대조영〉은 ‘드라마’가 된다. 그럼으로써 또한 단순한 영웅 서사에서 영웅의 인간미를 담은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이런 삼각관계들을 거쳐 대조영은 좀더 인간적 영웅이 되는지 모른다.
첫번째 삼각관계는 거란족 가한의 딸 초린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초린과 대조영 그리고 이해고가 사랑의 삼각관계를 이룬다. 여기서 대조영은 초린의 사랑을 얻음으로써 승리자가 된다. 당연히 대조영을 향한 이해고의 분노와 증오가 이야기의 출력이 된다. 두번째 삼각관계는 대조영 자신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는 두 여인, 초린과 고구려 왕족인 숙영 공주 사이에서 갈등한다. 여기서 그는 숙명적인 사랑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실리를 취한다. 숙영과 혼례를 치른다. 세번째 삼각 구도는 대조영도 모르게 초린이 낳은 그의 아들 ‘검이’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기른 아버지 이해고와 낳은 아버지 대조영 사이에서 ‘검이’는 갈등한다. 검이의 갈등은 다시금 숙적인 두 사람을 경쟁 관계로 몰고 간다. 이것이 이야기 후반부의 모든 투쟁과 고난의 극복 그리고 나라 세움이라는 대조영의 대과업 과정과 맞물려 있다. 여기서 대조영은 생부라는 것을 넘어서 인품과 능력이라는 점에서 검이의 마음을 산다. 다시 한번 이해고에 대해 승리자가 된다. 네번째 삼각 구도는 대조영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는 숙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과 검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검이의 결단으로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고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대조영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삼각관계를 해결해 나가면서 영웅적 과업을 이뤄내는 한 인간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삼각관계를 해결하는 것이 왜 영웅적인가? 삼차원적 세계에 사는 삼차원적 존재인 인간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서든 구체적 실천에서든 자신의 존재 조건보다 단순한 이분법적 상호 관계를 좀더 편하게 대한다.(상호 관계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반면 삼각관계는 그 형성의 순간부터 문제를 제기하며, 주인공이 그 구도를 벗어나서 어떤 상호적 차원에 안착할 때까지 갈등의 상황을 지속한다. 그러나 삼각관계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면 값진 것을 얻게 된다. 물론 대조영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 모든 고통의 상황을 극복해 나간 것은 아니다. 때론 자신의 인품과 도덕과 지도자로서의 능력으로 승리와 실리를 얻기도 하지만, 때론 다른 사람의 도움과 행운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 영웅은 능력과 행운의 조합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전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웅론’을 학습 동아리의 리포트로 작성하는 것을 지도해준 적이 있다. 그때에도 학생들은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함께 대하사극 〈주몽〉에서 소재를 얻어 ‘영웅의 유형’을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이제 〈대조영〉을 보고 나서 ‘영웅, 삼각관계 해결의 달인’이라는 유형을 첨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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