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따로’이면서 ‘같이’인 이성과 감성

등록 2008-01-11 19:07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브래드 버드의 ‘라따뚜이’를 통해 본 인간의 복잡성

대중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하면,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럴듯한 인생 교훈, 가족애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겉보기와 달리, 때론 매우 복잡한 의미들을 담고 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라따뚜이〉를 만들면서, ‘쥐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조명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영화사의 고전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저 유명한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에서 다리를 깁스해 거동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온종일 창가에 앉아 주변 아파트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라따뚜이〉의 주인공인 쥐 레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파트에 숨어들어 천장 틈이나 창틀 사이로 인간 세상을 엿본다.

레미는 인간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닮아 가려고 한다. 레미는 말한다. “나는 인간이 싫지 않다. 그들은 특별하다. 그들은 생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발견하고 창조한다.” 창의력! 레미는 인간 세상에서 바로 이것을 발견한다. 섬세한 후각과 미각을 지닌 레미는, ‘요리는 도전’이라는 파리의 유명 요리사 구스토의 조언대로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리라고 결심한다. 이제 그는 더는 인간의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도둑은 훔치고, 요리사는 만든다.”

그런데 레미는 혹여 인간이 귀엽게 봐줄 수도 있는 생쥐(mouse)가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시궁쥐(rat)다. 쥐는 주방과는 상극이다. 쥐가 주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맛있고 향기로우며 멋있는 음식을 창조하겠다는 레미의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무모함을 누가 막을 것인가. 레미가 구스토 레스토랑의 청소부이자 견습생인 링귀니와 짜고 요리를 할 때도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레미의 행동은 창조 욕구가 생존 본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인간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더구나 요리의 경우, 사람들이 곧 먹어 없앨 것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는 창조자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그 독특함이 있다. 그렇기에 역시 요리를 주제로 한 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창조란 요리가 아닐까?”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요리를 하는 것은 식욕 때문이 아니라 바로 창조 욕구와 창조물 향유 욕구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잘 만들어낸 것’은 우리 삶에 어떤 효과를 주는가? 무엇보다도 ‘경이로움’과 ‘감동’을 준다. 이것이 〈라따뚜이〉가 전하는 또다른 메시지다. 레미와 링귀니의 합작으로 구스토 레스토랑의 요리는 옛 명성을 회복해 가는데, 한때 구스토의 요리에 혹평을 썼던 요리비평가 안톤 이고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미식가를 넘어선 애식가로서 자신을 감동시킬 만한 까다로운 요리를 주문한다. 이때 레미는 프랑스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시골 요리인 ‘라타투이’를 만들어 내놓는다. 그런데 이고는 레미가 만든 음식을 조금 집어 입에 넣자마자 얼빠진 사람처럼 된다. 레미의 라타투이는 이고에게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바로 그 음식 맛과 함께 그때의 감동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이고는 다음날 이런 비평을 쓴다. “요리비평가란 직업은 참 편하다. 별 수고 없이 남이 정성껏 만든 요리를 맘껏 먹고 비판할 특혜를 누리니까. 혹평 기사는 쓰기도 읽기도 쉽다. 하나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다. 비평가들이 흔히 무시하는 소박하고 하찮은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비평가도 모험을 할 때가 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야 할 때다. 새로운 재능, 새로운 발명에 대해 세상은 불친절하다. 새로움에는 그것을 지지해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이고의 말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라는 것을 시사한다. 우선 감동과 경이로움 앞에서 사람은 깊은 성찰에 빠진다는 것을 일러준다. 이는 깊이 있는 이성적 성찰은 감성적 충격을 전제함을 의미한다. 이고 같은 냉혈 비평가의 고정관념을 깬 것도 감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과 감성은 이론적으로만 상반적이지, 실제 삶에서는 상호 깊이 연동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또다른 시사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고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라타투이 요리를 통해 찾은 것은 어릴 적의 추억과 감동이다. 요리든 공작이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은 종종 과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철학자 가다머가 말했듯이, 과거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은 ‘의미를 위한 새로운 기획’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시공간적으로 인간이 결코 단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레미가 간파했듯이 인간은 그 복잡함으로 인해 참으로 별난 존재인가 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anemos@ysu.ac.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