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 문화방송 제공
18살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25살 어른이 됐다. “사람이 싫고 어른이 무서웠던” 아이들에겐 어른이 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박준혁, 전혜린, 장애진, 김주희, 전영수, 박솔비.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학생(325명) 가운데서 살아남은 75명 중 6명이다.
그들이 어렵게 용기를 냈다.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밤 10시5분 방영하는 특집 다큐 <열여덟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문화방송)에서 그날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아이들은 고인 물만 봐도, 타고 있는 버스가 커브만 돌아도 두려움에 떠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랬던 그들이 7년 만에 자신의 삶을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 점점 잊혀가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게 여전히 힘들지만, 하늘의 별이 된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그 친구들을 오랫동안 기억해준 수많은 분에 대한 고마움 덕분에 저희가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죽음이 허망하지 않도록 그 아픈 기억을 되돌아보고 잊혀가는 이름을 불러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다큐 <부재의 기억> 스틸컷. 디엠제트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그들의 바람처럼 그날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문화판 곳곳에서 펼쳐진다.
방송사들은 이날 저마다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시비에스>(CBS) 라디오 특집 콘서트 <너의 목소리가 들려>(저녁 6시)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출연해 진행을 맡은 변영주 영화감독과 함께 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제작진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꿈 이야기를 할 때의 눈빛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지 못한 것에 못내 가슴 아파한다”고 전했다. 가수 말로, 제이훈, 제니스, 강허달림, 노브레인, 허클베리핀 등이 ‘거위의 꿈’ ‘벚꽃엔딩’ 등 아이들의 애창곡을 대신 부른다. 세월호 추모 특집 <독립영화관―한강에게>(한국방송1 밤 12시10분)와 지난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감독판>(문화방송 오전 10시45분)도 방영한다.
영화계에서도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당신의 사월>을 이날 오후 4시16분에 씨지브이(CGV)와 롯데시네마 등 전국 18개 극장에서 특별 상영한다. 주현숙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유가족이 아닌, 그날을 기억하는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 속 기억과 연대의 힘을 강조한다.
온라인에서도 세월호 관련 다큐를 볼 수 있다.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상영 프로그램인 ‘디엠제트랜선영화관 다락(Docu&樂)’이 세월호 단편 다큐 7편을 선보인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부터 청소년인 김묘인 감독이 연출한 <599.4㎞>까지 2014~202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을 기획전으로 구성했다. 애니메이션, 관찰 카메라 등 다채로운 접근을 통해 기억이 곧 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운다. 상영작들은 27일 밤 9시까지 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영화제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용 <빛, 침묵, 그리고…>. 김용걸댄스씨어터 제공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몸짓으로 그려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무대도 마련된다. 16~18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무용 <빛, 침묵, 그리고…>가 2014·2015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난다.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김용걸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날 일을 되새김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울부짖던 여자아이를 검은 남자가 지하로 끌고 가는 장면으로 극은 시작한다. 안무가 강렬하고 처절해, 보는 내내 숙연해진다. 김용걸댄스씨어터 소속 무용수 등 19명이 출연한다. 전석 무료이며, 아르코예술극장 누리집에서 예매 가능하다.
그날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전시도 펼쳐진다. 아이들이 다녔던 단원고, 합동분향소 터와 지척인 안산 경기도미술관은 4·16재단과 함께 이날부터 7월25일까지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념전 ‘진주 잠수부’를 펼친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선배 학자 발터 벤야민을 애도하면서 쓴 글의 제목을 딴 이 전시는, 경내 야외 조각공원에 희생과 애도의 과정을 각자의 조형언어로 풀어낸 현대미술 작가 9명(팀)의 13개 작품을 펼쳐놓고 지금 우리 공동체와 일상을 재조명한다.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던 주차장 터에 소금 가루로 선을 그렸다 다시 지우는 예술행위의 흔적을 남기며 슬픔의 모양을 형상화한 박선민 작가의 퍼포먼스 설치작품, 합동분향소 터가 내다보이는 미술관 앞마당에 당시 풍경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로 설치한 최진영 건축가의 ‘파빌리온 윗 위’ 등이 눈길을 끈다.
남지은 오승훈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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