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슬램덩크> 배경이 된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고교앞역 철길. 이준희 기자
‘땡땡땡땡.’
곧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차단막이 내려오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카메라를 꺼낸다. 철길 뒤로 펼쳐진 광활한 바다에는 만화 속 장면처럼 햇살이 따사롭게 빛난다.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숨 막히게 펼쳐지고, 초록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열차가 덜컹거리며 들어온다.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음 소리. 곧 환호와 탄성이 엇갈린다. 이 순간, 왼손은 그저 거들뿐이다.
지난 21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고교앞역 철길에선 매번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북산과 산왕전을 방불케 하는 사진 촬영 경쟁이 펼쳐졌다. 이 역은 단선 승강장에 평소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작은 역이지만, 최근 일본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운 역으로 다시 떠올랐다. 바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에 맞춰 다시 한 번 불기 시작한 농구 만화 <슬램덩크> 열풍 덕분이다.
<슬램덩크> 애니메이션판 오프닝에 등장한 가마쿠라고교앞역. 유튜브 갈무리
<슬램덩크> 팬이라면 기차, 철길, 바다라는 단어만으로도 즉각 이곳 풍경을 떠올릴 확률이 높다. 이 역은 만화는 물론 애니메이션 오프닝에도 등장한 곳으로, 슬램덩크 속 ‘능남고’는 가마쿠라고교를 모델로 하고 있다. 가마쿠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노구치 마오(39)는 “코로나19로 끊겼던 관광객이 최근 슬램덩크 덕분에 늘고 있다”며 “바로 어제도 한국인 관광객이 슬램덩크 때문에 이곳에서 묵었다”고 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배급사 제공
실제 이날 약 2시간 정도 지켜보니 만화 속 장면을 담으려는 이들이 이곳 철길을 계속 방문했다. 보통 30∼40명 정도가 있었지만, 기차가 약 5∼10분 마다 오기 때문에 회전 속도가 빨랐다. 다만 사진 찍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열차 위치, 햇살이 맞아 떨어져야 했다. 그 모든 게 완벽하게 어우러진 순간, 열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주체 못 한 누군가가 뛰어나와 포즈를 취하는 일도 생겼다. 그 순간 모두는 탄성을 내질렀고 ‘결국 그 사진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일본 농구 국가대표 토가시 유키(왼쪽). AP 연합뉴스
일본에서는 <슬램덩크> 돌풍과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는 선수들 활약상이 맞물려 농구 자체 인기도 올라가고 있다. 실제 이날 밤 스포츠 채널에선 와타나베 유타(29·브루클린 네츠), 하치무라 루이(25·LA 레이커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와타나베는 몇 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도전해 올 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있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여기에 167cm 키로 미국프로농구에 진출한 경험 덕분에 ‘현실판 송태섭’으로 불리는 토가시 유키(30·지바 제츠)까지 다시 대중적 관심을 끌며 일본프로농구(JBL)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토가시는 송태섭(168cm)과 키가 1cm 차이밖에 나지 않고, 포지션도 가드로 같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 대사가 꽤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정말로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가마쿠라/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