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잡기엔 1만원도 비싸다? 새해 유통업계가 ‘99샵’ ‘가격 역주행’ 등을 앞세우며 초저가 마케팅에 돌입했다. 실질소득 증가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비자는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 하고, 업체는 이에 맞춰 박리다매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모양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값싼 가격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에 침투하는 것도 국내 유통업계의 초저가 기획을 재촉하고 있다.
위메프는 8일 “1만원 이하의 초저가 패션 상품을 판매하는 전문관 ‘99샵’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위메프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패션 관련 상품 키워드 중 스파(SPA) 브랜드 검색량이 가장 많았다. 또 해당 브랜드 매출도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저가 패션 상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이월상품 매출도 73%나 증가했다.
99샵에서는 1만원을 넘지 않는 실속형 패션·잡화 제품 600여개를 선보인다. 매일 ‘990원짜리 초특가’ 상품도 소개한다. 펭귄 수면양말(1+1·990원), 스위스키친 레이어드 집업 자켓(9900원), 제이프랑 여성 기모 후드(9900원) 등이 대표 상품이다. 민경덕 위메프 패션실장은 “고물가로 저가 패션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위메프와 비슷한 ‘99’ 전략은 앞서 다른 이커머스(온라인 유통업체)들도 들고 나왔다. 11번가는 지난해 9900원 이하 생활·주방·스포츠·반려동물용품 등을 모아놓은 가성비 전문관인 ‘9900원샵’을 오픈했다. 티몬 역시 2500원, 5천원, 7천원, 1만원 등 가격대별 상품을 선보이는 ‘만원의 행복’ 기획관을 연 바 있다.
대형마트도 이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예전보다 가격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지난 5일부터 ‘인기 먹거리·채소·가공식품’ 등 식품 카테고리 내 ‘키(Key) 아이템’ 3가지를 뽑아 초저가로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월 가격 파괴 3종은 삼겹살·대파·호빵이다.
또 구매 빈도가 높은 주요 가공식품·일상용품 40개도 매달 뽑아 초저가에 판매한다. 다음달부터는 분기별로 2월, 4월, 7월, 10월 등 한 차례씩 ‘가격 역주행 1993’ 한정판 제품도 50여개씩 선정해 30~5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인다. 이마트 관계자는 “30여년 전 이마트가 처음 문을 연 1993년 수준에 버금가는 파격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역시 돼지 삼겹살·목살 등 먹거리를 최대 50%, 수납·욕실용품·완구 등은 최대 8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의 경우,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 중국 직구 사이트의 공세가 거센 만큼 가격 경쟁력을 보여주기 위해 초저가관을 앞다퉈 열고 있다”며 “대형마트는 비교 우위에 있는 신선식품 등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펴는 등 고물가·고금리 속 가성비 경쟁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99.5포인트였다. 8월 이후 다섯달째 100을 밑돌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장기평균(2003∼2022년)과 비교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