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 불평등 보고서’(Does Inequality Matter 2021) 표지 갈무리
세계적으로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고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데 왜 불평등 해소 정책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할까? 지난달 1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2021 불평등 보고서’(Does Inequality Matter 2021)를 발간했다.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불평등 보고서가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 △얼마나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지 △경제 성장에는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집중해왔다면 이번엔 ‘불평등 인식’에 초점을 맞췄다.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퍼지고 있음에도, 불평등 완화 정책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당연히 따라오진 않는다”며 사람들이 불평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정책의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는 주요 열쇠라는 취지다.
핵심은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우려의 총합이 커지는 동시에 우려의 다양성도 무척 커졌다는 데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8개 주요국을 대상으로 추적한 결과, 불평등 정도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불평등 인지도’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상승해 2008년 정점을 찍은 뒤 최근 10여년 동안 살짝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문제는 불평등을 용인하는 정도를 뜻하는 ‘불평등 선호도’ 역시 같은 궤적을 그린다는 점이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우려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에 적응하고 감내하기를 택하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탓이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국가 평균은 불평등 인지도와 선호도에서 시민들 사이의 드넓은 차이를 감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평균’에는 몇 가지 함정이 숨어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불평등에 대한 우려 자체도 적었지만 우려들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상·하위 10%의 소득 격차가 얼마라고 보는지 물으면 대답의 편차가 3.2배 정도에 불과했다. 이 차이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15.1배, 2019년에는 12.6배로 커진다. 불평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견해 차이가 20∼30년 만에 4∼5배나 벌어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불평등에 대한 생각을 결정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번째는 ‘불평등의 원인’이다. 출세의 중요 요소로 ‘근면’을 꼽는 사람은 불평등이 심하지 않다고 보거나 불평등을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대로 ‘운 또는 주어진 환경’이 있어야 출세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평등을 심하게 인지한다. 가난은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누진적 조세제도에 대한 찬성 여론이 적었다.
‘어떤 불평등’이 문제라고 보는지도 선호하는 정책 조합에 영향을 미쳤다. 어떤 나라(사람)는 소득 격차(결과의 평등)에, 또 다른 나라는 부의 대물림(기회의 평등)에 불평등의 방점을 찍는다. 전자는 실업급여 등 직접적인 소득 지원 정책에 무게를 두고, 후자는 교육이나 의료 시스템에 대한 공공지출 확대를 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무리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큰 사람도 국가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면 재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관료의 부패가 심해서 복지제도가 오·남용되거나 비효율적으로 분배될 거라는 믿음이 강한 나라에서는 누진적 조세제도에 대한 찬성이 적었다.
최근 30년 동안 생겨난 불평등 인식의 양극화는 ‘계층 간’이 아니라 ‘계층 내’에서 벌어진다는 점도 독특하다. 소득 불평등과 사회 이동성에 대한 인식은 소득수준·교육수준·고용 형태·성별·나이·가구 유형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런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설명되는 의견 차이는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의 인식차는 굉장히 비슷한 프로필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보고서는 “비슷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 큰 만큼, 단일한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정책 대상 집단 내에서도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한국은 불평등에 대한 ‘혼란스러운 인식’을 가진 나라로 그려진다. 소득 격차의 원인에 대한 설문(중복응답)에서 부모의 부라는 응답이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6%)보다 월등히 높은 동시에 노력(근면)이라 답한 비중도 86%로 평균(74%)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 대표적인 대목이다.
불평등을 강하게 인식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동의 수준이 떨어지는 모순적 모습도 나타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소득 격차는 너무 크다’는 문항에 동의하는 비율이 매년 조금씩 증가해 2019년에는 86.5%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득 격차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2017년에 65%가 동의하다가 2019년에는 57%까지 줄어들었다.
한국인의 불평등 인식을 연구한 최근 논문 ‘공정성 원칙으로서 능력주의와 불평등 인식’(우명숙·남은영, 2021)을 보면 “한국인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하는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소득 격차가 더 필요하며, 개인 책임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다. (…) 한국인들은 불평등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보다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간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도 한국의 소득 수준은 서유럽과 비슷하지만 불평등이 더 심하다는 진단이 담겼다. 한국 성인의 평균 소득은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3만3천유로(약 3843만원)로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올해 기준 상위 10%의 소득이 국가 전체 소득의 46.5%로 하위 50% 소득(16%)과 견주어 14배나 됐다. 이는 프랑스(7배), 이탈리아(8배), 영국(9배), 독일(10배) 보다 큰 격차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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