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지난 17일(현지시각) 한 남성이 파괴된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쟁이 세계 경제 회복을 역행하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 달린 부제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국 성장률 전망값을 크게 끌어내린 까닭을 간결하게 제시한 셈이다. 아이엠에프는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값을 지난해 10월 4.9%에서 지난 1월 4.4%로 깎은 뒤 이번에 다시 0.8%포인트나 낮춰잡았다. 지난 1월만해도 세계 경제가 오미크론 충격에서 벗어나 2분기(4~6월)부터 본격 회복세를 띌 것으로 이 기구는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충격이 국가마다 차별적으로 미치고 있는 점도 이번 보고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11.3%포인트)를 포함해 독일(-1.7%포인트), 영국(-1.0%포인트) 등 유럽국가들의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1월에 견줘 비교적 큰 폭 햐향 조정됐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의 조정폭은 각각 -0.3%포인트, -0.2%포인트로 미미한 편에 속한다. 한국의 조정폭(-0.5%포인트)은 미국과 캐나다에 견줘 크지만 유럽 국가에 견줄 바는 아니다. 러시아산 석유와 곡물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의 특수성을 아이엠에프가 이번 전망에 적극 반영했다는 의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의 조정폭이 미국·캐나다에 견줘 큰 이유에 대해 “한국은 원자재 해외 의존도와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샤 아이엠에프 경제자문관 겸 조사국장은 “러시아는 석유, 가스, 금속은 물론 우크라이나와 함께 밀과 옥수수의 주요 공급국”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상품의 공급 감소로 가격이 급격히 올랐고, 그 영향을 전세계가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쟁의 영향이) 지진파처럼 상품 시장과 무역, 금융에 걸쳐 멀리 전파될 것”이라며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식량과 연료 가격의 급등은 미국과 아시아 다른 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저소득 가정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엠에프는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값도 지난 1월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춘 3.6%로 제시했다.
아이엠에프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확대된 선진국과 신흥국·저개발국 간 격차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더 심화할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고물가와 경기 위축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신흥국과 저개발국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잇따른 긴축 행보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은 상대적으로 국가신용도가 낮은 국가들의 채무 부담을 높여 재정 여력을 더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는 분석도 아이엠에프는 내놨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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