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신임 국세청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14일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16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문재인 정부와 달라진 경제 정책 기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건 법인세 감세다. 정부는 14년 만에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다시 추진하고 각종 비과세·공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주로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는 친기업 ‘낙수효과’ 전략이다.
기업 규제·제재 완화 등 재계 요구사항도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투자 확대를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 감세로 재정 적자가 확대되면 기존 복지 예산 등을 삭감하는 부작용을 낳으리란 우려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발표하는 세법 개정안에 법인세 감세안을 담을 계획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추고 현재 4개인 세율 적용 구간을 2∼3개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09년 25%에서 22%로 인하한 뒤, 문재인 정부의 증세 조처로 2018년부터 연 소득(과세표준) 3천억원 초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그 초과분에 25%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국세청 과세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신고 기준) 연 소득 1천억원 초과 국내 기업은 296개, 5천억원 초과 기업은 49개에 불과하다. 현재 과표가 3천억원을 넘어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100여개 남짓한 대기업이 감세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고광효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현재 법인세 최저세율(10%)를 적용하는 과세표준 2억원 이하 구간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중소기업도 혜택이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재계 단체가 꾸준히 주장해온 다른 감세안도 대부분 수용하기로 했다.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이 국내·외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부과하는 세금 부담을 대폭 줄여 본사 배당과 투자를 촉진하기로 했다.
올해 종료 예정인 투자·상생 협력 촉진 세제는 연장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투자·상생 촉진세는 기업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투자, 임금 인상 등에 쓰지 않으면 법인세를 추가로 물리는 제도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기업이 쌓아둔 돈을 풀라는 취지로 도입했으나 재계에선 세금 부담만 키운다며 폐지를 요구했다.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된 기술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법인세에서 빼주는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도 중소·중견기업은 그대로 두고 대기업만 2%포인트 높이기로 했다.
총수 일가와 최고경영자(CEO) 제재도 합리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기업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한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책임자의 안전 확보 의무를 명확하게 정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여당도 최근 안전 인증을 받은 기업엔 최고경영자 처벌을 면제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또 재벌 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사익 편취), 통행세 부과 등을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등도 규제 적용 및 예외 인정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규정 개정에 착수한다. 최고경영자 등 특정인을 처벌하는 각종 경제 법령상 형벌 규정도 전수조사를 거쳐 법인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제재로 완화하기로 했다.
감세, 규제 완화와 함께 기업의 경영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없애준다는 취지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전직 관료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풀어주겠다는 건지를 모호한 상태로 남겨놓고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쓰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 등 대대적인 감세를 추진하면서도 별도의 세수 보완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법인세율 인하가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고 결국 법인세·소득세 등 세수 확보로도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법인세 감세가 고용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느리게 나타나겠지만 세수는 바로 줄어든다”면서 “구멍 난 세수를 어디서 벌충할지, 정부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세의 투자 확대 효과도 분명치 않다. 과거 이명박 정부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췄으나 세계 금융위기 등 대외 요인 탓에 실제 투자 활성화·고용 창출 등 긍정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 우려까지 제기되는 터라 당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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