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르며 채소 가격도 치솟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4일 상추(적상추) 가격이 4㎏에 5만7660원으로 1년 전 3만2168원에 비해 약 1.8배 올랐다. 대파 가격도 같은 날 기준 1㎏당 2166원으로 1년 전의 1130원과 비교해 약 1.9배 비싸졌다. 사진은 1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 판매대.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서민 물가 안정을 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세 차례의 물가 대책으로 약 10조원에 이르는 감세를 추진했지만 이를 통한 물가안정 효과는 기획재정부가 비공개에 부칠 만큼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성비’ 떨어지는 대책으로 물가도 못 잡고 취약계층 물가 부담도 줄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3개월 동안 잇따라 발표된 물가 대책의 핵심은 관세와 부가가치세, 유류세 인하다. 공급자의 부담을 줄여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발상이다. 지난 5월 정부는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에서 6천억원 규모의 관세·부가세 인하 대책을 내놨고, 6월에는 유류세를 연말까지 법정 최대한도로 낮추기로 했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유류세 감면으로 예상되는 세수 감소 규모는 8조8천억원에 이른다. 지난 8일 정부는 윤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수입산 소고기·닭고기 등에 대해 3300억원 규모의 감세 대책이 담겼다.
벌써 물가 대응 차원에서 10조원에 이르는 감세가 추진되고 있지만 이를 통한 소비자물가 경감 효과는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 5월 6천억원 규모의 관세·부가세 인하로 정부는 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는 같은 달에 편성된 2차 추가경정예산이 끌어올릴 물가(0.1%포인트)를 상쇄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이후 발표된 두 차례 물가 대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물가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금 인하를 통한 물가 대응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지난달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에너지와 식료품에 대한 세금 인하로 물가에 대응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퇴행적이며, 지속가능한 대응이 아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높은 국제 물가가 국내 경제에 전가되는 것을 허용하되 물가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 그게 지불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춰주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며 “에너지와 식료품 물가가 올라 세수가 더 걷히면 그만큼 취약계층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제통화기금이 31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금성 지원(48%)이 가장 보편적인 대책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조언에 역행하고 있다. 지난 2차 추경에서 1조7천억원 규모의 취약계층 지원 예산이 편성됐고, 지난 8일에도 4800억원 수준의 취약계층 재정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모두 합쳐도 감세 규모의 20%에 그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관세와 부가세 인하는 효과성이 떨어지는 품목에 대해 제한적으로 개입된 것이기 때문에 큰 도움은 안된다. 오히려 세수만 줄고 재정 여력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에 대한 지원책을 펴는 데 어려움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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