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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내년 예산 5.2% 늘어난 639조…대대적 긴축은 말뿐이었다

등록 2022-08-30 10:05수정 2022-08-31 02:40

2023 예산안 발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내년 예산안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내년 예산안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내년에 올해 본예산보다 5.2% 늘어난 639조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또 오는 2026년까지 향후 4년간 정부 지출 증가폭을 차츰 축소해 재정 적자를 소폭 줄여나가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재정 운용 기조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간 강조한 대대적인 긴축(지출 축소)보다 ‘현상 유지’ 수준에 가깝다. 대선 공약 이행, 복지 수요 증가 등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선 강력한 재정 긴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정부의 긴축 집착이 필수적인 사회 안전망 강화, 취약계층 지원 확대 등을 제약할 수 있는 만큼 국가가 할 일엔 제대로 돈을 쓰는 전향적인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를 열어 2023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방향성을 반영한 첫 연간 예산이다. 내년 정부의 재정 지출 규모는 총 639조원으로 올해 본예산(608조원)보다 5.2%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 정부 지출액은 앞서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직후 편성한 6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한 올해 총지출보다는 6% 줄어든 규모다.

내년 예산안엔 ‘따뜻한 나라, 역동적 경제, 건전한 재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서민·사회적 약자 지원, 미래 대비 투자에 집중해서 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생계급여액(4인 가구 기준)은 올해 월 154만원에서 내년 월 162만원으로 5.2% 오르고, 생계·의료급여 재산 기준을 완화해 4만8천가구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전문 인력 양성 등 반도체 산업에 1조원을 투자하고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핵심인 원전 기술 개발·인프라 조정 등에 6700억원을 지원한다.

내년 예산안에는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정부 국정과제인 고령층 기초연금 및 병사 봉급 인상, 부모 급여 신설, 청년 주택 공급 예산 등도 처음으로 담겼다. 모두 11조원 규모다. 기초연금은 올해 30만8천원에서 내년 32만2천원으로 4.5%, 병장 봉급(사회 진출 지원금 포함)은 올해 82만원에서 내년 130만원으로 58.5% 각각 인상된다. 현재 만 0∼1살 아이가 있는 가구에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영아수당은 내년에 월 35만∼70만원을 받는 부모급여로 확대하고, 청년 원가 주택 및 역세권 첫집 주택 5만4천가구 공급도 착수한다.

정부는 첫 예산안 편성을 통해 재정 운용 기조를 이전 정부의 ‘확장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 언론설명회에서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을 위해서 방만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의 기조 전환은 필수적”이라며 “내년 예산안은 건전 재정의 기틀을 확고히 확립해 나간다는 기조 아래 편성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8.9%였던 전년 대비 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을 내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4.6%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제외) 규모를 올해 5.1%에서 2023∼2026년 2%대 중반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현재 49.7%인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오는 2026년 52.2%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예고해온 전면적인 재정 긴축과는 거리가 있다. 역대 정부의 임기 중 재정 적자 비율은 이명박 정부 5년 평균 1.6%, 박근혜 정부 1.7%로 윤석열 정부의 목표치(2%대 중반)보다 낮았던 까닭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일회성 지출이 급증했던 문재인 정부도 2017∼2021년 임기 5년간 평균 재정 적자 비율이 2.9%로 3%를 넘지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 손실 보상 등 일회성 추경 편성으로 본예산보다 불어난 지출이 이례적으로 72조원에 달했던 만큼, 추경을 더한 올해 예산 대비 내년 예산이 감소한 걸 두고 재정 긴축이라고 홍보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향후 4년간 지출 증가율 관리 목표로 제시한 4.6%는 우리 경제의 ‘경상 성장률’(물가 상승을 반영한 성장률) 전망치와 같다. 이는 경제 성장 속도에 맞춰 딱 그만큼씩 재정 지출을 늘려가겠다는 의미다.

현 정부가 ‘건전 재정’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실제론 갈수록 늘어나는 지출 수요 등으로 재정 긴축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의 최우선 투자 분야로 앞세운 사회복지 지출도 내년 증가율이 5.6%로 올해(5.4%)보다 찔끔 늘어난다. 윤 대통령이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두툼한 지원’을 약속했으나 물가 상승과 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 증가분 정도만 반영된 ‘생색내기’에 불과한 셈이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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