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공적연금처럼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정해져 있어서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이 내년부터 예산의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026년까지 총지출 평균 증가율을 4.6%로 통제하겠다는 계획이어서 정부가 정책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임기 내내 빠듯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기획재정부의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내년 예산안 총지출 639조원 가운데 53.5%(341조8천억원)는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되어 있어서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전체 예산 가운데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현안에 대응하는 등 정책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재량지출 비중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량지출 가운데에서도 국방비나 인건비처럼 사실상 삭감이 불가능한 ‘경직성’ 재량지출을 제외하면 실제 재정 여력은 더 빡빡해지는 셈이다. 기초생활보장·노인·보육·일자리 등 사회보장에 쓰이는 사회복지 예산으로 한정해 보면, 총 사회복지 지출 205조8천억원 가운데 의무지출은 144조6천억원으로 70%가 넘는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연금 등 의무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26년까지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이 7.5%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복지 수준을 더 확대하지 않아도 의무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2026년까지 총지출 평균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수준(4.6%)으로 낮춰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의무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총지출 증가율을 통제할 경우, 정부의 정책 의지를 담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적 여유는 더욱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표’ 신규 사업을 위한 공약 재원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가 전망한 2026년까지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5%로 상당히 높은 반면 재량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1.5%에 불과하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법에서 정한 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동안 새로운 사업을 만들거나 새로 생기는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재량지출 증가율을 최대한 낮게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전체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을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누어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2018년(50.6%)과 2019년(51%), 올해(50.1%)를 제외하고는 줄곧 의무지출 비중이 50%를 넘지 않았지만, 내년(53.5%)부터는 의무지출 비중이 매년 늘어난다. 정부는 의무지출 비중이 2024년 54%, 2025년 54.7%, 2026년 55.6%로 지속적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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