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금융권의 대출금리 안내 게시물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2일 단행한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금리를 연속적으로 올려온 한은 통화정책이 이제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화정책 전선이 1400원대를 지속하고 있는 환율 방어전으로 본격 확대됐다는 얘기다. 다만 미국의 가파른 통화긴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전세계적으로 경쟁적인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어 한은의 환율 방어 통화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은) 우리의 중요한 정책 요인”이라며 “외환시장 변동성이 국내 금융시장으로 전이돼서 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굉장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환율을 한은의 ‘정책 요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가 환율을 언급한 횟수는 40번에 이르렀다. “(환율 상승세가) 완전한 추세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해서 (금리 인상) 결정에 반영하지는 않았다”는 이 총재의 지난 8월 발언과는 온도 차가 큰 셈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본격적으로 환율에 대응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올해 8월까지는 국내 물가 안정이 금리 인상의 핵심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통화긴축에 속도를 맞추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과업에 더 큰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 요인 중에서 환율 변수가 가장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은은 최근 급등세를 보이며 1450원대를 위협하는 환율이 국내 물가뿐 아니라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총재는 “환율의 급격한 절하는 두 가지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며 물가 상승과 국내 금융불안을 꼽았다. 그러면서 “환율이 절하되면서 마진 콜(외환거래에서 평가액 미달로 인한 추가 증거금 요구)이 외화 유동성을 압박할 수 있고 국내 금융시장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제까지 한은은 주로 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한은의 숨가쁜 금리 인상은 다음달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번에 0.25%포인트로 좁힌 한-미 금리 역전 폭이 3주 후에는 1%포인트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1월1∼2일(현지시각)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릴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미국 정책금리는 한국 기준금리보다 최대 1%포인트 높은 3.75∼4.00%가 된다. 원-달러 환율에 추가 상승 압력이 생기는 셈이다.
다음달 한은이 또 다시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이날 케이비(KB)증권과 대신증권 등은 다음달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또한번 0.50%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한은의 금리 인상은 유의미한 환율 하락 효과를 내기보다는 최소한의 방어 효과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미 연준의 가파른 통화긴축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중국 경기 둔화와 다른 국가들의 경쟁적인 금리 인상 등 원화 가치를 끌어내릴 만한 대외 요인들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이 총재는 “우리가 어떤 조치를 하더라도 방어책,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며 “큰 틀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긴축 정책이 어느 속도로 어떻게 갈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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