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모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사업장. 이노비즈협회 제공
대기업과 금융회사까지 자금난을 겪을 정도로 심각한 신용경색 국면이다. 산업 생태계의 아래쪽에 위치한 중소기업은 더 어려운 처지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힘들어진 대기업들이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며 중소기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선 제조업체 ㅈ사를 운영하는 ㅎ대표는 잇단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연초에 견줘 50%가량 높아졌다고 했다. ㅈ사에 적용되는 대출금리는 연초 3% 수준에서 현재 5%대 중반에 이르러 이자로 한 달에 3천만원 넘게 물고 있다고 했다. 대출 규모는 70억원 수준이라 한다. 그는 “장치산업이라 대출금액이 많다”며 “담보를 맡겨 그나마 싼 이자를 적용받는 편이며, 주위 중소기업인들은 대개 7%대 금리를 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전반의 자금 사정을 보여주는 잣대로 한국은행에서 다달이 내놓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가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따로 분류돼 나와 있다. 최신 자료가 9월 기준이고, 10월 수치도 이달 말쯤이나 나올 예정이라 현재 상태를 반영하기엔 한계를 띠지만, 중기 자금 부담의 흐름은 엿볼 수 있다. 9월 기준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4.87%로 집계돼 있다. 2014년 1월(4.88%) 이후 8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10월 들어 기준금리를 2.50%에서 3.00%로 올렸음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 쪽 부담은 여기서 훨씬 더 가중됐을 터다.
한은 조사에 따른 중기 대출금리는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 3.13%에서 내림세를 타면서 그해 10월 2.81%까지 떨어졌다가 오름세로 돌아섰고, 올해 6월부터 상승 폭을 키웠다.
임영주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공기업인 한전까지 자금 조달에서 곤란을 겪고,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은행으로 몰리니, 중기 자금 사정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건설 쪽 중소기업들에서 자금줄이 끊겨 한 푼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호소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경기가 식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꽉 막히고, 중소 협력 건설사들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임 실장은 “중소기업계에서 회사채를 발행하는 식의 직접금융은 건수로 2% 정도, 금액 기준 0%대 수준이라 채권 시장 위축에 따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지만, 시차를 두고 간접금융 쪽에 대한 파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중앙회는 고금리 흐름에 따른 중소기업 쪽의 애로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 주 들어 긴급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해마다 12월께 벌이던 연례 조사와는 별도이며, 다음 주에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현재 자금 사정이 어떤지, 외부 자금을 얼마나 이용하는지,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만기 연장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 조사 자료는 체감도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중에는 연 매출 10억원 업체도 있고 1천억원도 포함돼 있으며 적용 금리가 천차만별이어서 평균 금리로는 영세 업체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파장 같은 급박한 사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홍성규 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은행들이 합리적 수준을 넘어 ‘이때다’ 하는 식으로 가산금리를 과도하게 인상할 수 있는 독과점 구조, 불공정 거래가 문제”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원청인 대기업 쪽에서 납품 가격을 제대로 올려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일이 금융 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임영주 실장은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높아 (중기 자금난은) 전반적인 고용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를 보면, 전체 기업 종사자의 81.3%(2020년 기준)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임 실장은 “정책금융의 역할을 키우는 방향으로 예산에 추가 반영할 필요가 있고, 대외 상황(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어려워진 만큼 은행들이 과도한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분담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 따라 갑자기 어려워진 여행, 급식업 같은 영역의 신용등급 하락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