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8월29일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 1면 톱기사는 내년도 예산안 기사로 채워진다. 내년 예산안에 대한 설명과 전문가의 평가 등이 어우러진 기사다. 그런데 기사를 쓴 기자나 이를 평가한 전문가조차도 내년도 예산안을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기획재정부가 국무회의 직후 발표한 자료에 ‘2024 예산안’이 첨부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발표한 ‘알뜰 재정, 살뜰 민생 2024년 예산안’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진짜 예산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및 국가재정법에 따라 국회에 제출하는 ‘2024년 예산안’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서다. ‘2024년 예산안 홍보자료’라고 적은 피디에프 파일 이름이 정확하다. 정부가 문서 제목을 ‘2024년 예산안’이라고 잘못 다는 바람에 정부 홍보문건에 불과한 문서가 마치 내년도 예산안처럼 해석되고 유통된다.
기획재정부의 2024년 예산안 홍보자료. 제목을 ‘2024년 예산안’으로 달았다.
대한민국 헌법 및 국가재정법에 규정하는 진짜 ‘2024년 예산안’은 9월2일 국회에 제출된다. 그 전에는 아무도 내년도 예산안을 보지 못한다. 실제 국회에 제출하는 내년도 예산안에는 당연히 세부사업별 금액이 들어 있다. 반면, 국무회의 직후 발표하는 ‘예산안 홍보자료’에는 자랑하고 싶은 사업만 예시로 담겨 있다. 자랑하고 싶은 사업만 골라 홍보하면 젖과 꿀이 넘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산안의 본질은 예산 제약 안에서의 자원 배분이다. 한정된 국가 자원을 배분하다 보면 자랑하고 싶은 증액사업도 생기지만 숨기고 싶은 감액사업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예산안에는 모든 세부사업별 금액이 명시되기 때문에 어떤 세부사업이 증액 또는 감액됐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재부의 예산안 홍보자료에는 자랑하고 싶은 사업만 나열돼 있다.
물론 기재부는 증액뿐만 아니라 감액도 자랑한다. 예산안 홍보자료에는 무려 23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지출구조조정’ 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종 반지성을 언급한다. 나는 지성과 반지성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면 ‘검증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면 검증 가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재부가 23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검증할 수 있게 세부사업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 검증 가능성이 없다면 믿음의 영역이다. 기재부는 보지 않고 믿는 일을 기대해서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기자들이 지출구조조정 목록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국회에도 제공하지 않는 자료니 기자에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예산은 정치다. 정치는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한다. 한정된 자원을 국민의 동의를 통해 배분하는 것이 예산편성 과정이다. 지출구조조정 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다. 동의를 하려면 최소한 무엇을 동의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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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지출구조조정’이라는 말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2023년도 예산안을 공개할 때는 ‘지출구조조정’이 아니라 ‘지출재구조화’라고 표현했다. 전 정부는 매년 10조원 규모의 ‘지출재구조화’를 했지만, 23년도 예산에는 24조원의 ‘지출재구조화’가 담겼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지출재구조화’ 24조원 목록을 요청했지만 기재부는 예산안 심의를 마칠 때까지도 국회에 제공하지 않았다. 24조원의 지출재구조화 사업은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2024년 예산안 홍보자료에는 이를 ‘지출구조조정’이라고 이름을 바꿔 표현했다. 지출구조조정의 정의가 무엇인지, 지출재구조화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필자는 졸저 ‘23년 예산안, 지출구조조정의 현황, 의의,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감액·증액사업을 분석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 밝힌 감액사업 액수와 기재부가 주장하는 ‘지출재구조화’ 금액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감액사업의 정의와 ‘지출재구조화’ 정의가 다르니 금액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감액사업은 정확한 정의가 있다. 검증 가능성은 물론 그 개념의 한계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자랑이 아니다. 겨우 기본은 지켰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재부가 언급한 지출구조조정이라는 개념은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 목록조차 발표하지 않아 검증할 수도 없다. 검증 가능성 없이 믿음을 강요하는 주장은 반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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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주장을 짐작해보자. 예산안 홍보자료에는 비록 세부사업 목록은 없지만 그래도 각 분야별 변동 금액은 담겨 있다. 분야별 변동 내역은 내년 예산안의 요약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국회에 제출되는 세부사업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에 국무회의 통과 즉시 요약 홍보자료를 미리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을 아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홍보자료만으로 내년도 예산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특히 기재부가 예산안 홍보자료를 통해 공개하는 분야별 금액도 검증 가능성이 대단히 제한적인 잘못된 방식이다. 기재부는 내년도 총지출이 656조9천억원이며 보건·복지·고용에 242조9천억원, 알앤디(연구개발)에 25조9천억원 등 12개 분야에 금액이 배분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재부가 언급한 12개 분야 배분 금액을 모두 합하면 무려 661조5천억원이 나온다. 즉, 기재부 홍보자료에 있는 분야별 배분 내역은 총지출액 656조9천억원의 배분 내역이 아니다. 대한민국 공식 예산 분류체계(16대 분야)를 따르지 않은 기재부 예산안 홍보자료에만 나오는 독특한 분류체계(12대 분야) 때문이다. 분야별 금액이 중복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복지 알앤디에 1조원을 지출하면 복지 예산도 1조원이 늘어나고 알앤디 지출액도 1조원이 늘어나는 구조다. 이렇게 중복해서 각 분야를 설명할 바에야 아예 더 통 크게 중복 범위를 넓혀 복지에도 500조원을 쓰고 알앤디에도 200조원을 쓴다고 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16대 분야를 통해서 재정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기재부 홍보자료에만 나오는 12대 분야의 금액을 검증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국무회의 통과 시 예산안 홍보자료를 발표할 때, 실제 예산안을 첨부하자. 국가재정법에서 정한 국회 제출 일정보다 더 빨리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둘째, 예산안 홍보자료에 기재부의 자의적인 분류 방식인 12대 분야가 아니라 16대 분야로 분석된 배분내역을 담자. 12대 분야별 예산 분류체계는 중복과 배제를 통해 합하면 총지출액이 나오지 않는 기묘한 방식이다. 검증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검증 가능성이 없는 주장은 반지성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