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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최저 증가율이 목표였나…내년 예산안 관통하는 ‘프리드먼 집착’

등록 2023-08-30 18:06수정 2023-09-06 15:50

지출증가율 2.8%에 짜 맞춰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첫해 예산 편성 때 건전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해 총지출 증가율을 대폭 축소한 데 이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 내년 총지출을 다시 대폭 축소한 2.8% 증가로 억제했다. 건전재정을 위한 정부의 고심 어린 결정이었다.”

지난 27일 ‘2024년 예산안’ 기자간담회장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정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사실상 역대 최저 총지출 증가율을 담은 예산을 편성한 그에게선 비장감마저 묻어났다. 추 부총리는 심지어 ‘예산 동결’(총지출 증가율 0%)도 검토한 사실도 대여섯번이나 되풀이해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더 놀라운 말도 과감하게 꺼냈다. “고심 끝에 2.8%라는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을 정하고, 내년도 예산 편성에 임했다.” 기재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기 이전에 ‘역대 최저 증가율’을 ‘제1의 원리’로 설정했다는 말이다. 그는 “대통령도 강한 건전재정 의지를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제1원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내비친 셈이다.

198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선택할 자유>에 등장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198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선택할 자유>에 등장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이는 내년도 예산안은 현 정부가 출범 때부터 선포해온 ‘건전재정 확립’을 더욱 공고화하겠다는 보수주의 재정 이념과 철학이 강하게 투영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젊은 시절에 탐독했다고 밝힌 책 ‘선택할 자유’(1980년, 밀턴 프리드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재정 철학을 전편에 걸쳐 신화처럼 설파한다. 작은 정부의 핵심은 재정 규모다.

긴축재정 자체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 긴축재정을 편성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세수결손 44조원과 내년의 세수 감소 추정치(애초 전망 대비 51조4천억원) 등 세수입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불가피한 사정’에 대한 설명은 예산안 브리핑에서 별로 할애하지 않았다. 세수 부족 같은 ‘지출 제약 요인’을 강조하면 당장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 확산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동시에 이념 혹은 신념에 충실한 예산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실과 유리될수록 신념은 교조성을 띤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경제가 과열이라면 긴축예산이 맞지만 지금은 민간 부문의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경제 사이클 국면에 와 있다”며 “전세계적으로 기술패권 경쟁, 산업정책으로 회귀 경쟁이 일어나면서 각국마다 오히려 재정을 충분히 활용하는 상황이고, 또 정부 재정건전성 문제는 중장기적인 시계를 굉장히 길고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2년 연속 1%대 저성장이 예상되고 소득·자산 양극화 심화라는 국내 상황과 미-중 패권 경쟁과 같은 대외 여건 등 우리 경제가 마주한 객관적 현실과 유리된 예산안이란 뜻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내년 예산안에는 세금 감면 등 ‘조세 지출’ 관점에서도 보수주의 이념이 확연히 드러난다. 9월1일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2024년도 조세지출예산서’를 보면, 대규모 세수결손 사태 속에 각종 법인·소득세 감세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집중된 사실이 여실히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내년 조세지출 규모는 77조1천억원에 이르는데 이 중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47곳이 받는 세금 감면액은 6조6천억원으로 2022년(3조8천억원)보다 2배가량 는다. 근로소득 연 78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감면액도 2022년 12조5천억원에서 내년에 15조3천억원로 증가한다. 추 부총리는 “(국민들이 낸) 세금을 규모 있고 알뜰하게 쓰겠다”고 말했지만 국민경제 활력과 소득 재분배에서 ‘적극적인 정부 재정의 역할’이라는 재정의 기본 소임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념형 예산 편성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우리 경제와 경제 주체가 안는다. 총지출 증가율 2.8%는 정부 스스로 예상하는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값(4.9%)보다 낮다. 이는 투자·소비·수출로 구성되는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정부 스스로 갉아먹겠다는 뜻이다. 역대 최저 총지출 증가율 예산 편성이라는 ‘제1원리’가 경제 현실과 맞닿을 때 나타날 결과다.

조계완 선임기자, 최하얀 안태호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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