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에 견줘 3.3% 오르며, 넉 달 만에 오름세가 둔화했다. 다만 상승폭 둔화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이라는 게 정부와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 물가는 2달 연속 1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3%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7월 2%대로 낮아졌으나, 8월 3.4%, 9월 3.7%로, 10월 3.8%로 오름폭을 다시 키워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영향으로 지난 9월 국제유가가 평균 배럴당 93.1달러(두바이유 기준)까지 올랐던데다, 이상 저온 현상까지 나타나며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던 탓이다.
물가 상승세가 지난달 둔화된 데는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안팎까지 내리며 석유류 가격도 뒤따라 내린 게 영향을 크게 미쳤다. 지난달 석유류 공업 제품은 1년 전에 견줘 5.1% 하락했다. 특히 경유와 등유가 각각 13.1%, 10.4% 내렸다.
물가 변동의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경제협력개발기구 방식) 상승률은 지난달 1년 전에 견줘 3.0% 오르며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섬유 제품과 내구재를 중심으로 상품 가격의 오름폭이 축소된 영향이다. 앞선 근원물가 상승률은 9월 3.3%, 10월 3.2%였다.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 3.0%는 지난해 3월(2.9%)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낮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추가적인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추세적인 물가 안정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차츰 둔화하더라도, 지난달 수준의 둔화 폭을 앞으로 계속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오전 열린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유가가 다시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향후 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누적된 비용 압력 등과 관련해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정책 목표인 2% 수준으로 물가 상승률이 수렴하는 시기를 일러야 내년 말로 보고 있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다소 안정됐어도,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장바구니 물가는 크게 무거워진 점은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이다. 소비자물가지수 구성 품목(458개) 가운데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 변동이 민감하게 느껴지는 144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0% 올랐다. 또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나 마트 등에서 주로 사는 신선과실·신선채소·신선어개(생선·해산물) 품목 55개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도 12.7% 급등했다. 지난달 신선식품지수 상승률은 10월(12.1%)에 이은 두 달 연속 12%대 오름폭이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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