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감정가로 매입해 피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빠르게 돌려주고 이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 앞서 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라 엘에이치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한 뒤 경·공매를 거쳐 보증금을 회수하는 방식은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고 회수 가능액도 적다는 판단에서다.
국토교통부는 10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주택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엘에이치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협의매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차인 외 다른 채권자가 없는 경우부터 협의매수 대상이 될 예정이다. 피해 주택의 감정가가 보증금보다 적다면, 임차인이 보증금을 감정가보다 낮게 감액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채권자가 여럿인 경우엔 채권조정 협의를 거쳐 감정가 안으로 부채 총액이 조정되면 엘에이치가 매입할 수 있다. 국토부는 협의매수와 채권조정을 위한 절차와 기준 등을 정해 2월 중 관련 업무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피해 주택의 권리 관계가 복잡해 협의 매수가 곤란한 경우엔 기존 특별법에 담긴 대책대로 우선매수권을 통한 경·공매 대행을 지원한다. 협의 매수와 우선매수권 활용이 모두 어려운 일부 다가구주택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전세임대 지원이 새롭게 시행된다. 전세임대는 엘에이치가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맺은 뒤 피해자에게 낮은 임대료로 다시 임대하는 방식이다. 당장 집에서 쫓겨날 위기는 해소되지만 보증금 회수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토부 관계자는 엘에이치 협의매수 방안을 새롭게 내놓은 배경에 대해 “경매 시장이 얼어붙어 속도가 나지 않는데다, 경매를 하더라도 예상 낙찰가가 마지막 집 매매가의 30∼40%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협의매수로 보증금 회수 속도를 높이고, 회수 기대 금액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협의매수에 필요한 예산은 현재 편성돼 있는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용 예산(7천억원·5천호)을 활용할 방침이다.
협의 매수 대책 발표는 지난해 1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야당이 단독 통과시킨 전세사기 특별법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반환 채권을 최우선변제금 상당액 이상으로 매입하고, 이후 경·공매 등을 통해 주택을 처분하는 ‘선구제 후구상’ 특별법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피해자들로 구성된 전세사기 대책위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전 임시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