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도 다른’ 가상과 현실의 권력자들
게임 세상 /
게임을 웬만큼 해본 사람들은 게임에 녹아있는 권력 획득에 심취한다. 권력을 맛본 사람은 결코 게임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온라인 게임 속 권력자들은 게임 운영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온라인게임 권력자들에게 강력한 무력은 필수다. 높은 레벨과 비싼 아이템이 무력의 기본이다. 때문에 남보다 강한 무기를 얻기 위해 현금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력을 획득했으면 다음은 자신의 조직을 만들 차례다. ‘리니지’나 ‘뮤’ 같은 인기게임은 수백명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거대 길드도 많다. 길드의 최고 권력자는 총군주로 칭한다. 총군주는 일선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한다. 총군주 밑에는 부군주 및 각 라인별 군주들이 있다. 이들은 실질적인 조직의 대소사를 주관한다. 길드의 규모가 클수록 조직체계가 그물망처럼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다.
무력과 조직만 갖췄다고 권력을 얻는 건 아니다. 전쟁을 통해 명성을 떨쳐야 한다. 특히 공성전은 권력획득으로 가는 최종단계다. 대부분 길드는 성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이용자들의 투표로 권력자를 뽑는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 치열한 전쟁을 통해 일인자를 선발한다. 어려운 과정 끝에 성을 차지한 길드의 군주는 성주로 우대된다. 성주의 권력은 무소불위다. 서버 전체 이용자들에게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게임에 따라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원의 게임머니를 거둬들일 수 있다. 실제로 ‘리니지2’의 성주 캐릭터의 몸값은 현금으로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한 유명 길드는 외부업체로부터 스폰서까지 두고 활동할 정도다. 게임 내 성주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법과 질서로 통한다.
그러나 권력의 종말은 의외로 허무하다. 보통 거대 길드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권력집단 스스로 멸망을 자초했다. 특히 조직의 잘못된 인사는 거대권력을 흔드는 시발점이다. 대부분 성주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조직의 수뇌부로 임명한다. 주로 같은 피시방을 사용하는 지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권력을 나누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권력누수가 생긴다. 오만한 권력자들은 함부로 다른 캐릭터를 죽이거나 이권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성주는 조직원의 전횡을 묵인하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부패는 이용자들의 불만을 낳고, 결국 대규모 민중봉기로 이어진다. 권력을 잃은 성주는 깨끗이 게임을 떠나야 한다. 그나마 게임의 권력자가 현실의 권력자와 다른 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물러날 줄 안다는 것이다. 권력의 상징인 군주 캐릭터를 스스로 삭제하고, 사이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덕규/<게임메카>(www.gamemeca.co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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