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아하 그렇구나
‘임금 삭감’과는 무관
‘임금 삭감’과는 무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 대란이 현실로 다가오자 임금을 깎아 일자리를 나누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이 신입사원을 뽑을 경우 초임을 지난해보다 최대 30% 삭감하도록 지시했고, 지난달 25일에는 30대 그룹의 채용 담당임원들이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최대 28% 깎아 고용안정과 신규채용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졸 초임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언론에서는 이런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유지나 나누기를 두고 ‘잡셰어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잡셰어링의 본래 의미는 이와 좀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큰 틀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말은 임금삭감 또는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보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정의한 ‘워크셰어링’(Work Sharing)과 ‘잡셰어링’(Job Shar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워크셰어링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감을 나눔으로써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것입니다.
잡셰어링은 직무분할을 통해 1명의 풀타임 일자리를 2명 이상의 파트타임 근로자가 나누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임금을 깎아 채용 인원을 늘리거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워크셰어링도 잡셰어링도 아닙니다. 그냥 넓은 의미에서 일자리 나누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임금만 깎고 채용 인원은 늘리지 않는다면 이는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경제위기를 틈탄 기업 쪽의 일방적인 비용절감 행위에 불과하겠지요. 30대 그룹의 신입사원 초임 삭감 방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은 임금 삭감 계획만 밝히고, 신규 채용 규모나 구체적인 고용안정 대책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나중에 신규 인력을 채용하더라도 임금 삭감을 고려해 인원을 더 뽑았는지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임금을 조금 깎는 대신 고용을 늘린다면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임금만 깎는다면 경기 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습니다. 임금이 줄면 가뜩이나 움츠러들어 있는 노동자들은 지갑을 더 닫게 되고 이는 내수회복을 통한 경제 살리기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됩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공황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도 올려줬습니다. 노동자의 소비 여력을 키워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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