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던진 과제/견제 없는 오너리스크] (상)
롯데 상장사 6곳, 304차례 이사회 안건 전부 ‘만장일치’ 처리
롯데 상장사 6곳, 304차례 이사회 안건 전부 ‘만장일치’ 처리
롯데 주요 상장사 이사회의 안건 처리 만장일치 현황
롯데·한화 계열사 내 전직 임원 출신 사외이사 현황
한화 등도 ‘거수기 역할’ 비슷
사외이사가 감사 겸임하기도 ‘이사회 기능 강화’ 등 상법 개정
박 대통령 약속해놓고 태도 바꿔 이에 따라 총수 일가의 ‘손가락 경영 리스크’를 견제할 내부 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와 감사가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앞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1995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앞으로 전문 경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누리집에서 “‘2018년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핵심 역량을 강화하여 해외 무대로 끊임없이 진출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경영 행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어, 상법 개정 등 제도적 견인 없이는 변화가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상장회사와 관련한 상법상 특례법(제548조의 8)은 2조원 자산 규모의 회사는 사외이사를 3명 이상 두고, 사외이사가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되도록 함으로써 회사 경영을 독립적으로 감시하라는 취지를 담았다. 하지만 롯데나 한화에서 드러난 사외이사 면면과 이사회 운용 행태는 현행법이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란 걸 보여준다. 낙후된 이사회 기능은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나온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4개국 가운데 25위였다. 하지만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독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하는가의 항목에서는 130위로 2년 전 121위에서 뒷걸음질하면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는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이사회의 기능과 소액주주의 보호는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짚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사회와 감사 기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은 전혀 진척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독립적 사외이사와 감사 선임을 지원할 집중투표제 의무화나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정책은 경제민주화 대신에 규제 완화로 표변했다. 2013년 법무부가 후보 시절 공약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만들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의 노선 변화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같은 해 8월에 신동빈 롯데 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와 만나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경제에 찬물 끼얹는 입법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후퇴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2년 만에 롯데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필요성과 함께 묻혀버린 상법 개정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것에 더해 기존 순환출자 해소도 검토한다고 하거나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등 ‘강력한 재벌 개혁 수단’을 언급했으나, 곧바로 말을 뒤집어 ‘립서비스’에 그쳤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의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롯데의 대실패(fiasco)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완벽한 기회를 제공했지만 최근 대기업에 일자리 창출 등을 호소하면서 이 기회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시민단체는 최근 여당의 ‘립서비스’ 정책 대신에 박 대통령의 공약만 실행되어도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공약대로 상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가 제구실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서재교 사회적경제센터 시에스아르(CSR) 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1998년에는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기업이 자산 1조원 규모 이상이었는데 2000년에 자산 규모 2조원으로 바뀌었다”며 “이를 되돌려 더 많은 기업이 사외이사를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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