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오른쪽 두번째)이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17년 중장기조세정책심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 총지출을 올해 본예산보다 7.1% 늘린 429조원 규모 ‘2018년 예산안’을 접한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대체로 두가지 방향으로 나뉘었다. 먼저 복지 확대를 지향하는 쪽에서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정건전성을 따지다 보니 기대만큼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재정수지를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묶었다지만, 복지 지출의 불가역성을 생각하면 국가채무는 시일이 지날수록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반된 다른 입장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한 곳으로 모인다. 재정정책의 ‘책무성’(accountability)을 위해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30일 발표한 ‘2017년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은 마치 이런 우려와 요구에 대한 답변처럼 느껴진다.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소득재분배와 과세형평성 제고를 위해 고소득층, 대주주의 세부담을 적정화하고 변칙적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과세도 강화하기로 했다. 자본·금융소득에 대한 과세의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재산세 제도도 손볼 계획이다. 특히 과도하게 많은 소득세 면세자를 줄이고, 기업 규모에 따라 격차가 큰 법인세 실효세율도 살펴보기로 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 전체의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리는 중장기 계획을 제시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29일 고형권 1차관 주재로 중장기 조세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7년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을 확정했다.
먼저 국민 다수가 과세대상인 소득세의 중장기 운용방향은 ‘소득 종류간·계층간 과세형평 제고 및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로 결정됐다. 한국의 소득세수(2016년 기준)는 총조세 대비 24.8%, 국내총생산(GDP) 대비 4.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0%, 8.4%에 못미친다. 특히 근로소득은 각종 비과세·공제 감면 등으로 실효세율이 5.0%에 불과하고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도 전체 근로소득자의 47%(2015년 기준)에 달하는 실정이다. 또 금융소득·자본이득 등에 대한 과세도 실효성이 낮은 상황이다. 이에 기재부는 소득 종류별·계층별 조세 형평성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중장기 검토과제로 삼았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와 금융소득·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강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는 기업과세 제도 합리화와 세입확충 기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최근 세법 개정안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린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주요 20개국(G20) 평균인 25.7% 수준으로 정상화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 조세중립성 제고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중립성이란 세부담에 따라 납세자의 경제적 환경에 변화가 생겨선 안된다는 원칙이다. 현재 법인세 실효세율(2016년 기준·잠정) 역시 상호출자제한기업은 19.6%, 중소기업 12.8% 수준으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과도하게 차이가 나는 실효세율 격차를 누그러뜨리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밖에도 재산과세 분야에서는 거래세 부담이 높고 보유세 부담은 낮은 양도소득세·재산세 과세 제도를 손보고, 종합부동산세의 과세표준을 결정하는 공정시장가액 등 재산평가제도를 개선·보완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가가치세는 디지털 경제 등 거래 방식이 바뀌면서 조세 환경 변화에 대응하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부가가치세 면제 범위도 경제·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조정할 계획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은 하반기 설치될 예정인 조세재정개혁특위 활동에 앞서 정부가 제시한 기준으로 주목된다. 앞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조세개혁 논의에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전문가·시민 등이 함께하는 조세재정개혁특위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복지국가 건설을 약속한 진보정부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조세개혁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