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가 11조7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문재인 정부 네번째 추경으로 7년 만에 최대 규모다.
하지만 세계적 대유행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코로나19의 여파에 대응하기에 합당한 수준인지를 놓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피해 지원의 사각지대와 규모의 적절성에 대한 이견과 함께, 미증유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틀을 벗어난 과감한 정책 수단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4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 극복을 위한 추경안’을 의결하고 5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추경안 사전 브리핑에서 “코로나 피해 극복을 지원하고, 경제 모멘텀을 살리는 한편 얼어붙은 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책을 최대한 담았다”고 설명했다.
11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세출 확대 8조5천억원과 부족한 세입을 메우기 위한 세입경정 3조2천억원으로 나뉜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세출 확대는 방역체계 보강(2조3천억원), 중기·소상공인 지원(2조4천억원), 지역경제 회복 지원(8천억원), 민생·고용 지원(3조원)에 투입된다. 소상공인·중소기업의 긴급 경영자금 지원에 2조원이 투입되고, 상반기 안에 돈을 쓰도록 저소득층, 아동 등에 2조원 규모의 상품권을 제공하는 게 뼈대다. 세입 경정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아 우려되는 세수 결손에 대한 보전액이 2조5천억원, 코로나19에 대한 조세지출 6천억원, 신성장·원천기술 세액공제 확대 1천억원 등이다.
이번 추경은 총선을 앞둔 국회 일정과 신속한 피해 지원 필요성, 513조원에 이르는 본예산이 이제 막 집행되기 시작한 1분기라는 사정을 두루 고려한 결과물로 보인다. 정부는 코로나19 피해 지원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은 담기지 않았다. 촉박한 편성 작업 탓에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도 어려웠거니와, 2월 국회 마지막날인 17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치적 논란을 최대한 피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이번 추경은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만으로 세출 확대 8조5천억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메르스 추경의 피해 지원(4조원 상당)의 2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으로 코로나19의 충격을 오롯이 흡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먼저 추경의 규모와 사업 발굴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특수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당장 일자리와 생계가 위험에 빠진 한계계층에 대한 지원 대책에 사각지대가 많아 보인다”며 “이런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포함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규모를 늘리는 편이 바람직했다”고 짚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익숙한 정책 수단을 급하게 꺼내든 느낌”이라며 “내수 소비를 늘리기 위한 ‘상품권 추경’인 셈인데, 코로나19 충격으로 사실상 경제활동이 중단된 지금 이 정도 대책으로 소비가 회복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재정당국의 기존 인식의 틀을 벗어난 정책적 상상력이 나타나지 않은 점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일(현지시각) 긴급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한 것 등과 비교할 때 너무 안이한 인식 아니냐는 것이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한 정책 수단을 활용해야 하는데, 현재 편성된 추경으로는 우리 재정당국이 현 상황을 얼마나 엄중하게 인식하는지 실감하기 어렵다”며 “현금성 복지에 대한 재정당국의 우려가 크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재난기본소득 등의 새로운 정책 수단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홍콩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해 만 18살 이상 영주권자 약 700만명에게 1인당 1만 홍콩달러(150여만원 상당)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예산안을 편성한 바 있다. 재난 시기에 한정한 기본소득인데, 즉각적인 소비진작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세계 경제의 빠른 하강과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 붕괴로 인한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추가 대책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생산 측면의 위기가 시작되면 마땅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충격이 올 수 있으므로, 대규모 2차 추경 등 추가 대응 방안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복영 교수도 “코로나19로 각국 정부가 국경을 봉쇄하는 등 보호주의 정책을 펼칠 땐 수출의존형인 한국 경제에 상상하기 힘든 여파가 있을 수 있다”며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책 공조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인 경제 외교 활동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노현웅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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