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얼음을 깨면서 운항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 조선업계의 계산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에 미칠 긍적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이 뒤섞여 있어서다. 우선 유럽을 향하는 러시아 가스관이 잠길 경우 국내 조선사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주문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국가다. 반면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달러 결제가 금지되면, 러시아 선주사가 주문해 제작에 들어간 선박 건조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내 조선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전날 종가 대비 각각 6.97%, 6.65% 올랐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21.9%나 급등했다. 배경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수주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다.
러시아는 유럽의 천연가스 최대 공급자다. 유럽은 천연가스 필요량의 40%가량을 러시아에서 받아쓴다. 주로 가스관을 통해 공급받는다. 러시아가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가스관을 잠궈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이 수입 다변화를 위해 한국 조선사에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발주할 거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조선사는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시장의 압도적 강자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전 세계 엘엔지 운반선 발주 물량의 87%를 따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천연가스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향후 엘엔지 관련 설비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향후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유럽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파이프라인 외 방법으로) 엘엔지 수입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기대감에 국내 조선업체들의 주가는 상승했지만, 개별 조선사는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자금결제 중단으로 확대되면 러시아 쪽으로부터 수주한 선박 건조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함께 10여척의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건조 중이다. 대우조선해양도 러시아 해상에 투입될 ‘액화천연가스 저장·환적설비(LNG FSU)’를 만들고 있다.
조선사들은 뱃값을 건조 단계별로 나눠 받는다.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의 건조대금을 한꺼번에 지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인도 시점에 뱃값의 대부분을 받는 ‘헤비 테일’ 방식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선박 건조를 완료해도 뱃값의 상당 부분을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달러 결제가 불가능해지면 원화로 대금을 받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와 함께 러시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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