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재무 부담, 주력 계열사 롯데케미칼의 실적 악화, 유통 계열사들의 부진, 홈쇼핑 송출 중단 등 롯데그룹 전반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일부 계열사들은 희망퇴직을 받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에 예년보다 보름 이상 늦어지고 있는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에도 관심이 쏠린다.
롯데면세점은 14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사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1980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희망퇴직 대상은 근속연수 15년 대리급 이상 직원들로, 해당 직원은 롯데면세점 전체 인력의 약 15% 수준인 160여명이다. 앞서 창사 이래 첫 적자가 예상되는 롯데하이마트도 희망퇴직 신청(16일까지)을 받고 있다. 근속연수 10년차 이상 또는 만 50살 이상 1300명이 대상이다.
두 계열사의 희망퇴직 실시는 실적 부진의 여파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들어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의 ‘가전 특수’가 사라지면서 지금까지 7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롯데면세점 역시 여행수요가 살아나면서 올 3분기 적자행진을 멈추고 흑자전환했지만, 1~3분기 누적적자만 533억원에 달한다.
롯데그룹은 올해 대형 악재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롯데건설이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대표적이다. 롯데건설이 롯데케미칼에서 5천억원, 롯데정밀화학에서 3천억, 롯데홈쇼핑에서 1천억 등 계열사로부터 총 1조1천억원에 달하는 전방위적인 자금 수혈을 받으면서 롯데건설 발 재무부담이 그룹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케미칼이 올 2분기 영업적자(214억원)로 돌아섰고, 3분기에는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인 423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주력 계열사의 실적마저 악화됐다.
롯데케미칼은 내년 2월로 예정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잔금도 확보해야 한다. 업황 악화로 부진한 실적 속에서 꿔야 하는 돈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계약금 지급 등이 이뤄지면서 올해 말 재무안정성이 추가 악화할 수 있다. 2023년에는 현금창출력을 크게 상회하는 투자로 순차입금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롯데지주 역시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푸드 지분 인수 등 계열사 지원과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출이 늘었다. 여기에 롯데홈쇼핑은 대법원 판결로 내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새벽방송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대한 손실액만 따져도 영업이익 기준으로 36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평가사들이 롯데 계열사들의 신용도를 줄줄이 낮추는 등 시장에선 롯데그룹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이례적으로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 롯데 계열사 8곳에 대한 신용 등급 전망을 무더기로 ‘부정적’으로 낮췄다.
롯데그룹의 채권발행 규모 역시 상당하다. 신용평가사들이 신용 등급을 낮춘 게 그룹 전반의 자금조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코스콤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보유한 회사채 잔액은 22조6880억원 규모로, 현대차그룹(47조6284억), 에스케이(SK)그룹(39조9809억원)이어 세 번째로 많다. 당장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만도 5조7490억원, 2024년엔 6조4520억원에 달한다.
롯데그룹 안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특수를 누리는 동안, 유통 계열사는 쿠팡 등에 맞서 온라인시장 경쟁력을 높였여야 했고, 롯데케미칼 역시 배터리 사업 등 신규 사업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변했어야 했다”며 “업황이 꺾이는 상황에서 이제야 변신하려다 보니 재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엘지(LG)그룹이나 한화그룹처럼 배터리나 태양광 투자를 끈기있게 하는 대신 현실에 안주한 측면이 있다”며 “이젠 너무 늦었다는 ‘만시지탄’ 얘기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분석가는 “주력 사업에서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롯데건설의 부동산 사업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대규모 인수·합병까지 동시에 진행해 유동성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점도 이런 전방위적인 위기감과 어두운 내년도 전망이 영향을 미친 탓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15일 정기인사를 단행할 예정인데, 예상보다 인사 폭이 큰 ‘쇄신’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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