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의 노인요양·복지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8일 오후 경산시장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일부 문 닫은 상점 앞을 지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경산을 대구·청도에 이어 세번째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경산/연합뉴스
“확진자가 나와 공장을 멈춘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납품이 늦어져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네요.”
지난 4일 수화기 너머 들려온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의 중소기업 공장장 ㄱ씨 목소리엔 시름이 잔뜩 묻어 나왔다. 지난달 24일 그가 관리하는 공장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확진 통보 이후 6일간(휴일 포함) 공장을 멈췄다. 감염자 추가 발생 여부도 걱정이지만 납기 지연 위약금도 그를 불안하게 한다. 그는 “여러 품목을 소량 생산하는 시스템인 터라 납기일이 품목별로 짧다. 공장을 멈춘 기간 동안 납기 지연으로 계약이 여럿 깨졌고 위약금 등 피해액이 4억원에 달한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산업 전반에 충격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영세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종업원 수가 적은 터라 확진자나 밀접접촉자만 나오면 전 직원이 자가격리될 수 있다. 자본 규모도 적어 생산 손실 흡수능력이 취약해 자칫 도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납기 지연에 따른 위약금이나 계약 파기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공장을 폐쇄한 귀뚜라미보일러 청도공장 등 <한겨레>가 파악한 코로나19로 공장을 멈춘 중소업체는 경북 청도에서만 10여곳에 이른다. 여기에는 감말랭이 공장 등 직원이 10명도 채 안 되는 곳도 있다.
경북에 있는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일신화학도 코로나19로 곤경에 빠졌다. 생산직 직원 한명의 확진 판정으로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6일까지 공장 가동을 멈췄다. 가동 중단 기간이 보름 가까이 길어진 건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직원 5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종업원 수는 7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고 물량만 출고하고 있다. 대기업은 사업부문별로 나뉘어 있어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그 사업부만 피해를 보는데, 영세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거의 마비가 온다”고 밝혔다. 그는 “납기를 못 맞춰 생긴 위약금 등이 모두 2억원 정도이다. 수출 물량 위약금은 판매대금의 110~120%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확진자가 없는 중소기업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 공장을 두고 있는 화장품업체 대표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여유자금이 적다. 생산을 해서 돈이 입금돼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며 “만약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공장을 잠시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100명 정도 되는 직원들 급여, 납기 지연 위약금 등은 무슨 돈으로 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가뜩이나 줄어든 주문조차 납기를 못 맞추면 거래처의 신뢰를 잃어 추가 거래가 끊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업체는 중국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전체 매출의 60%다. 코로나19 여파로 현재 수출 주문은 크게 줄었고 국내 주문도 손세정제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한다.
중소기업들은 감염 확산 대응에도 취약하다. 경북에 소재한 한 중소업체의 임원은 “직원 다수가 마스크도 없이 일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나가서 몇시간 동안 줄 서서 마스크 2개씩 사오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자동차·조선산업 등 대기업 작업장에 들어가는 중소업체들은 감염 예방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기도 한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선 지난달 2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현대차 소속 직원들은 방진 마스크를 모두 지급받았지만,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현대차는 물론 소속된 하청업체에서도 받지 못했다. 현대차 쪽은 <한겨레>에 “마스크 물량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소업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터라 정부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원청업체인 대기업들의 자발적 상생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영세업체는 그달 대금을 받아서 바로 쓰는 식으로 운영된다. 방역, 긴급자금 조달, 원자재 재고 확보 등 추가 비용이 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원청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마스크나 대기업에서 만든 방역 매뉴얼 등을 함께 공급하고, 지불하기로 한 자금이 있다면 미리 주는 등 상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갑수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지역본부장은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비상상황”이라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거래처가 공장 폐쇄 기간만큼은 납기를 연장해주고 위약금도 면제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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