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이 법안에 반대하다 막판에 찬성으로 돌아서 가결되게 만든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왼쪽)에게 서명에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와 보건 분야에 대한 4400억달러(약 576조원) 규모의 지원과 3천억달러 규모의 증세 법률에 서명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표 입법’의 최대 성과를 거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37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세액공제 등을 뼈대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전기자동차 생산 등 친환경 산업 지원을 통해 2005년 배출량 기준으로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담은 법이다. 이 법에는 의료보험 보조금 지급 연장 등 복지 강화 대책도 담겼다.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10년간 대기업과 갑부들을 대상으로 3천억달러를 증세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10억달러 이상 연매출을 올리는 기업에는 최소 15%의 법인세율이 적용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애초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한 2조달러 규모의 ‘더 나은 재건을 위한 법’에는 못 미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 지출 계획을 담아 상당한 성과로 평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법안 서명을 위해 백악관에 일시 복귀해 “이 법으로 미국인들을 승리했고, 특정 이익 집단들은 패배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는 지난 1년여간 이 법안 처리를 두고 씨름해왔다. 하원에선 민주·공화당의 당론에 따라 찬반이 갈렸고, 상원에서도 50 대 50 의석 분표대로 찬반이 나뉘었으나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여당 내 야당 의원’으로 불리는 민주당의 조 맨친 의원이 반대 입장에서 막판에 찬성으로 돌아선 게 법안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기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보호주의적 조항을 넣어 한국 등 외국 업체들의 상대적 피해도 예상된다. 이 법에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신차는 세액공제를 최대 7500달러, 중고차는 4천달러까지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상은 미국을 비롯한 북미에서 완성된 차로 한정됐다. 또 리튬, 니켈,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광물의 40%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된 것이라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비율의 기준은 2029년에는 100%로 올라간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키우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담은 것이다. 한국에서 만든 전기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현대차와 기아차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미국시장 경쟁력에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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