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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새벽에 우당탕, 호텔 2층까지 물이 찼다”

등록 2010-03-03 08:33수정 2010-03-03 10:56

로빈슨크루소 섬 쓰나미 한국인 2명의 현장증언
바닷물 썰물처럼 빠진뒤 높은 파도 덮쳐
언덕으로 대피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칠레 강진이 일으킨 쓰나미는 해안가 마을과 섬들을 집어삼켰다. 삼성 지역전문가 과정으로 칠레에 머물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윤호(40) 차장과 라현선(35) 과장은 때마침 로빈슨 크루소섬을 방문했다가 쓰나미와 맞닥뜨렸다. 두 사람이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한 당시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재구성했다. 주민 600여명이 사는 이 섬에선 이번 쓰나미로 최소 8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27일 새벽 4시30분께(현지시각). 3층짜리 호텔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잠결에 흔들렸을 때는 태풍인가 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태풍이 아니구나 싶었다. 창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거센 파도소리와 사람을 부르는 소리, 우지직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희미하게 건물 잔해들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무서웠다.

서둘러 옆방 현선씨의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꿈인가 했다가 산사태가 난 줄 안 현선씨도 놀라 깨어 있었다. 서로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컴퓨터만 챙겼다. 뛰어 내려가다보니 물은 2층까지 가득 찼다. 2층에서 잠자던 외국인들은 물에 잠겨 허둥대고 있었다. 호텔 뒤쪽으로 뛰쳐나왔다. 주민들은 파도가 또 올 수 있다며 언덕으로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호텔 주인이 물에 잠긴 집에서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주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갔다. 하루 전까지 그렇게 아름답던 해변가의 마을과 가게, 체육관은 완전히 쓸려나가고 터만 남았다. 바닷가에는 가재도구들만 떠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파도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주민들은 바닷물이 썰물처럼 한번 빠져나간 뒤 높아진 파도가 갑자기 다시 덮쳤다고 말했다. 나무로 만든 집이어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파도와 함께 그대로 휩쓸려 나갔다. 전 재산을 잃고 허탈해하는 어민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비통했다. 현선씨는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날이 밝자 어촌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나섰다. 어민들이 물 속에서 주검을 하나둘씩 건져낸 뒤 어딘가로 옮겼다. 주민들은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해안가를 뒤졌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 나머지 소지품을 챙겨서 산으로 돌아왔다.

작은 배들이 드나들며 구호품을 건네줬다. 저녁 7시~8시께가 되어서야 경찰서로 가서 회사에 안전하다고 첫 연락을 했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난 뒤 언덕 위 숙소에서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면 쓰나미가 아닌가 싶어 뜬눈으로 이틀간 밤을 지샜다.


칠레 정부에서 외국인들을 경비행기로 대피시킨다는 소식이 들렸다. 1일 군용헬기를 타고 인근 알레한드로 셀커크 섬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조종사를 제외하고 5명이 탈 수 있는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달 24일 들어갔던 로빈슨 크루소섬이 점점 멀어졌다. 칠레 본토에서 약 670㎞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섬.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실제 모델인 스코틀랜드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가 4년4개월간 살았던 아름답던 섬은 폐허로 변했다. 흔들리는 경비행기 속에서 2시간 남짓,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1일 오후 4시30분께였다.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정리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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