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친구가 아프간에 남았습니다, 마실 물도 없는 수천만 곁에

등록 2021-09-03 05:00수정 2021-09-03 15:26

[아프간은 지금 ⑤] 지금 이후
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 직원
2016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에서 함께 하이킹을 갔을 때 굴람 레자 모하마디의 옆모습. 송첫눈송이 제공
2016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에서 함께 하이킹을 갔을 때 굴람 레자 모하마디의 옆모습. 송첫눈송이 제공

화창하고 고요한 9월의 첫날 오후(현지시각), 베를린 외곽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앞. 카불 공항을 빠져나온 120가구가량을 수용한 캠프 앞에서 내 한국인 친구 부부가 내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 전 동료 굴람 레자 모하마디와 그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간은 지금’ 첫 회에서 소개했던 레자는 바미안에서 카불까지 180㎞의 거리를 걸어 탈출한 뒤 카불에 미리 이주해 있던 부인과 아이들을 만났고, 며칠간 공항 진입을 시도한 끝에 프랑스 기자단의 도움으로 함께 카불을 탈출했다. 레자 가족은 8월22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23일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 열흘째 베를린 난민 캠프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나는 큰 걱정을 덜었지만, 난민 캠프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몸만 급하게 떠나온 레자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메신저 교류만으로는 소통에 한계가 있었다. 당장 레자를 돕고 싶었지만, 독일에서 난민 서류 절차가 끝나지 않아 독일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려면 두 달 정도가 더 걸린다고 했다. 나와 레자가 서로 꽤 답답하던 차에, 마침 베를린에 체류 중이던 내 대학 동창 부부가 선뜻 레자에게 대신 방문해주겠다고 나섰다.

베를린 난민캠프 닿은 레자

난민 캠프는 베를린 중심가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친구 부부는 “제법 큰 규모의 단층 컨테이너 시설이 늘어서 있고, 아이들이 그 사이사이로 뛰어노는 평화로운 소리가 울린다”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많은 것이 궁금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 이후로 아프간 내 은행 대부분의 지점은 문을 닫았다. 일부 문을 연 지점엔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 동시다발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려는 ‘뱅크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레자는 지난 20여년간 일하며 모은 돈을 어찌하였을까 걱정이 됐다. 그는 아프간 은행에 미화 8천달러가 좀 못 되는, 아프간에서는 정말 큰 돈을 모아뒀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계좌에 연동돼 있는 마스터카드 체크카드의 승인은 되지 않고 있다. 레자는 1천달러(약 120만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바미안에서 나왔는데, 카불을 떠날 때 남겨진 부모님께 800달러를 드렸다고 했다. 손에 200달러를 쥐고 독일에 도착한 셈이다. 

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외곽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송첫눈송이 제공
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외곽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송첫눈송이 제공

아프간 은행 계좌 인출 정지…200달러 쥐고 출국

나는 급한 대로 원고료 일부를 친구의 계좌로 보냈다. 친구는 돈을 좀 더 얹어 레자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사 들고 간 코로나 방역 마스크도 함께였다. 레자는 캠프 입구에서부터 친구 부부를 맞으러 뛰어왔다고 했다. 레자는 친구의 친구라도 방문해준 것에 크게 고마워하며 “지난 열흘간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면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오늘, 이 만남을 포함하여 좋은 일이 두 개가 되었어요. 방금 브란덴부르크에 있는 독일의 모 대학과 이집트의 대학이 연계 운영하는 세계문화유산관리 석사 과정에 합격을 했고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주에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어요.” 레자가 나와 유네스코 전 상사 사라의 도움을 받아 아프간을 탈출하기 한참 전부터 지원을 시도했던 바로 그 석사 과정이다. 레자는 고국을 탈출해야만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결실을 맺었다.

아프간 엘리트, 독일서도 인정해줄까?

하지만 목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오래도록 꿈꿔왔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합격의 기쁨 속에서도 레자는 어딘가 차분했다. 나 역시 이들이 아프간을 떠난 것을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다. 레자가 얼마나 바미안의 산천을 사랑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미안으로 출장을 나갈 때면 일과가 끝난 이후 레자와 그 친구들과 함께 하이킹을 다녔다. 바미안 친구들은 천진한 얼굴로 이곳의 물이 얼마나 맑고 시원한지,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지를 자랑했다. 친구 부부가 캠프를 떠나고, 레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의견도 뚜렷했던 레자가 고맙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이 어딘가 낯설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난민으로 정착한 낯선 국가에서, 아프간 최고의 엘리트였던 레자는 과연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나도 레자도 그런 의구심을 조용히 삼켰다.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의 풍경. 나시르 하비불라(가명) 제공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의 풍경. 나시르 하비불라(가명) 제공

카불 남기로 결심한 나시르

3회에서 소개했던 나시르 하비불라(가명)는 카불 공항 진입에 실패하고 카불에 남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을 가다듬은 뒤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일단 아프간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자신과 아프간 내 엘리트층들은 탈출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런 기회를 얻지도, 꿈을 꾸지도 못할 만큼 가난한 이들이 아프간의 대다수라고 했다. 이 나라에 남아 앞으로 어떤 경로로 탈출을 할 수 있을지 눈치 보는 데 진을 빼는 것보다, 탈레반을 설득해서라도 굶어 죽는 수천만의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는 것에 노력을 쏟고 싶다고 했다. 탈레반 지도부에 연줄이 닿는 친구가 있는데, 그를 통해 지도부와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겁을 한 나는 한사코 나시르를 말렸지만, 그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정말 당장의,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나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도울 여력과 계획과 경험이 있고. 내가 하자라족인데다 문화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진행해왔으니, 탈레반의 표적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는 이 사회의 엘리트로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나라에서, 탈레반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내 일신의 안전만을 바랄 수는 없어. 무서워서 계속 숨죽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내가 그냥 죽어서 숨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달라?”

아프간에선 전쟁과 테러로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잇따른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2018년 아프간의 끔찍했던 가뭄을 기억한다. 물과 식량을 찾아 수많은 국내 이주민이 생겼고, 그 물 부족이 내전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했다. 그 이후로 아프간에 가뭄은 거의 매년 찾아왔다. 가뭄이 이 나라의 붕괴가 촉진된 한가지 이유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나시르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카불에 남아 인도주의 봉사를 진행할 인재들을 모으고 탈레반과 협의할 방안을 살얼음 걷는 심정으로 마련하고 있다. 나시르의 계획은 성공할까? 어제의 적을 동료로 만드는 과정은 참으로 불안하고 또 씁쓸할 것이다. 인재풀이 전무하다시피 한 탈레반은 아프간이라는 복잡한 상황의 나라를 꾸려가는 데 있어 나시르와 같은 기존 엘리트층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탈레반이 과연 이성적인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에, 나시르는 그 계획에 목숨을 걸고 있다.

“굶어죽는 수천만 위해 목숨 걸고 탈레반 설득”

30일 마지막 미군 병사들이 떠나고, 현재 카불 공항은 닫혔다. 탈레반이 2~3일 내로 공항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지만, 닫힌 공항 내에서 이런저런 시설들을 만져보다 포기하고 카타르의 기술자들을 불러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정보부 요원들이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이 두고 간 전투기와 무기들을 점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탈레반은 꽤나 적극적으로 외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과연 기존 국내 엘리트층까지 품고 국가를 운영해나갈 수 있을까? 과거 탈레반 테러의 공식적인 표적은 언제나 자신의 나라를 침략한 “외세”였다. 하지만 바로 그 테러에 실질적으로 목숨을 잃은 대다수는 같은 민족, 같은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테러 중간중간의 평화협정이나 이성적 대화는 아프간 정부보다도 그 “외세”와 함께 협력하여 진행했다. 탈레반이 지난 20년간 수많은 자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의 끝에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탈레반은 이제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아프간의 두 엘리트 레자와 나시르의 앞에는 어떤 운명이 놓여 있을까? <끝>

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 직원

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 직원.
송첫눈송이 전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 직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