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뉴델리의 유명한 쇼핑센터인 안살플라자 앞에서 쇼핑을 나온 전통의상 사리 차림의 인도 여성 옆에 현대적 감각의 모델을 내세운 인터넷회사의 광고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뉴델리/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인도의길인도의힘2부:새 ‘슈퍼파워’ 현장을 가다]
지방의석 33% 여성할당 ‘유리벽이 금가고 있다’
지방의석 33% 여성할당 ‘유리벽이 금가고 있다’
농촌 남초현상·차별 여전…도시엔 당당한 여성 늘어
정치·경제 참여 늘고 신발·의류 등 여성시장 급성장 “인도 여성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도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머리를 맴돌았다. “인도 시골 지역에선 남아 1000명당 여아 비율이 700∼800명밖에 안 되는 지역이 많다. 그만큼 많은 여자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 낙태된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 취급을 받았고, 아들만이 부모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으며 딸은 부모의 주검을 만질 수도 없다. 농촌 여성의 87%가 여전히 문맹이다. 결혼할 때 충분한 지참금(다우리)을 가져가지 못하면 구타당하거나 죽기도 한다.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농촌 지역에선 여성들이 여전히 큰 고통과 차별을 받고 있다.” 인도 최대 여성단체인 전인도여성회의(AIWC)의 마노라마 바와 대표는 아직도 여전한 인도의 남존여비 실태를 고발한다. 비하르주 등 가난한 농촌 지역에선 여아 낙태와 살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신부 부족 현상이 심각해, 어린 소녀들이 가난한 부모들에 의해 불과 몇만원에 신부로 팔려나간다. 지난해에는 종교단체들이 여아낙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여성들이 남편을 따라 죽도록 하는 사티도 법으로 금지됐지만,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선 지금도 남아 있다.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95년 지참금 금지법이 의회에서 통과됐고, 지참금 요구는 보석 없는 7년형으로 엄격하게 처벌받지만,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바와 대표는 “그래도 법률이 시행된 뒤에는 시집 식구들의 폭력을 고발한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대도시에 가면, 자신만만하고 당찬 인도 여성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인도 조사기관 패스파인더가 2005년 도시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5개 도시에서 여성 1500만명이 취업하고 있으며, 1993년~2003년 10년 사이에 여성 취업은 10% 늘었다. 45%의 도시 여성들이 집안에서 경제적 발언권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간지 <인디아투데이>는 2002년에서 2005년 사이 여성 신발시장 규모가 250억루피에서 400억루피로, 여성 의류시장은 1900억루피에서 2900억루피로 급성장했다고 보도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간부, 경제전문가로 활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최고 명문대학인 인도공과대학(IIT)의 여학생 비율은 10년 전 5%에서 현재 12∼15%로 매우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 페미니즘 출판사인 ‘주반’의 우르바시 부탈리아 편집장은 “너무나 대조적인 두 모습이 모두 현재 인도 여성의 삶”이라고 말한다. 인도의 심각한 여성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도전이 이어지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유리벽’을 깨는 주역이 되고 있다. 92년 여성단체들의 요구로 지방선거에서 의석 33%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부탈리아 편집장은 “전국의 마을에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들이 정치는 무슨 정치냐’고 비아냥거렸다. 여성들이 부패하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자, 이들은 여성들을 위협하고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지지를 받아 재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운동가들은 전국 의회 선거에도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의회 541석 가운데 여성의원은 10여명뿐이다. 인도 여성들이 전통의상 사리를 벗어던지기 시작한 것도 변화를 상징한다. 몇년 전까지 인도 여성들은 수영장에서도 사리를 입고 수영을 하고, 알프스산 꼭대기의 추위 속에서도 반팔 사리를 고집했다. 이제 거리에는 사리와 펀자비 같은 전통의상부터 청바지까지 다양한 차림의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이 전통 외에도 다른 선택권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탈리아 편집장은 “여아낙태와 지참금 같은 드러나는 여성 문제 외에도, 보수적인 힌두근본주의의 확산과 세계화의 충격이 인도 여성들이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빈곤한 가정에선 여성들이 가장 적게 먹고 건강도 돌보지 못하는 이중의 차별을 겪게 된다. 인도에선 빈곤문제는 바로 심각한 여성문제다. 사회적 불만이 고조돼 여성들에 대한 폭력 등도 심해지고 있다. 여성문제는 어디서나 쉬지 않고 풀어야할 문제다.” 뉴델리/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정치·경제 참여 늘고 신발·의류 등 여성시장 급성장 “인도 여성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도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머리를 맴돌았다. “인도 시골 지역에선 남아 1000명당 여아 비율이 700∼800명밖에 안 되는 지역이 많다. 그만큼 많은 여자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 낙태된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 취급을 받았고, 아들만이 부모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으며 딸은 부모의 주검을 만질 수도 없다. 농촌 여성의 87%가 여전히 문맹이다. 결혼할 때 충분한 지참금(다우리)을 가져가지 못하면 구타당하거나 죽기도 한다.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농촌 지역에선 여성들이 여전히 큰 고통과 차별을 받고 있다.” 인도 최대 여성단체인 전인도여성회의(AIWC)의 마노라마 바와 대표는 아직도 여전한 인도의 남존여비 실태를 고발한다. 비하르주 등 가난한 농촌 지역에선 여아 낙태와 살해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신부 부족 현상이 심각해, 어린 소녀들이 가난한 부모들에 의해 불과 몇만원에 신부로 팔려나간다. 지난해에는 종교단체들이 여아낙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여성들이 남편을 따라 죽도록 하는 사티도 법으로 금지됐지만,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선 지금도 남아 있다.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95년 지참금 금지법이 의회에서 통과됐고, 지참금 요구는 보석 없는 7년형으로 엄격하게 처벌받지만,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바와 대표는 “그래도 법률이 시행된 뒤에는 시집 식구들의 폭력을 고발한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대도시에 가면, 자신만만하고 당찬 인도 여성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인도 조사기관 패스파인더가 2005년 도시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5개 도시에서 여성 1500만명이 취업하고 있으며, 1993년~2003년 10년 사이에 여성 취업은 10% 늘었다. 45%의 도시 여성들이 집안에서 경제적 발언권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간지 <인디아투데이>는 2002년에서 2005년 사이 여성 신발시장 규모가 250억루피에서 400억루피로, 여성 의류시장은 1900억루피에서 2900억루피로 급성장했다고 보도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간부, 경제전문가로 활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최고 명문대학인 인도공과대학(IIT)의 여학생 비율은 10년 전 5%에서 현재 12∼15%로 매우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 페미니즘 출판사인 ‘주반’의 우르바시 부탈리아 편집장은 “너무나 대조적인 두 모습이 모두 현재 인도 여성의 삶”이라고 말한다. 인도의 심각한 여성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도전이 이어지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유리벽’을 깨는 주역이 되고 있다. 92년 여성단체들의 요구로 지방선거에서 의석 33%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부탈리아 편집장은 “전국의 마을에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들이 정치는 무슨 정치냐’고 비아냥거렸다. 여성들이 부패하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자, 이들은 여성들을 위협하고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지지를 받아 재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운동가들은 전국 의회 선거에도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의회 541석 가운데 여성의원은 10여명뿐이다. 인도 여성들이 전통의상 사리를 벗어던지기 시작한 것도 변화를 상징한다. 몇년 전까지 인도 여성들은 수영장에서도 사리를 입고 수영을 하고, 알프스산 꼭대기의 추위 속에서도 반팔 사리를 고집했다. 이제 거리에는 사리와 펀자비 같은 전통의상부터 청바지까지 다양한 차림의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이 전통 외에도 다른 선택권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탈리아 편집장은 “여아낙태와 지참금 같은 드러나는 여성 문제 외에도, 보수적인 힌두근본주의의 확산과 세계화의 충격이 인도 여성들이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빈곤한 가정에선 여성들이 가장 적게 먹고 건강도 돌보지 못하는 이중의 차별을 겪게 된다. 인도에선 빈곤문제는 바로 심각한 여성문제다. 사회적 불만이 고조돼 여성들에 대한 폭력 등도 심해지고 있다. 여성문제는 어디서나 쉬지 않고 풀어야할 문제다.” 뉴델리/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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