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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교회 뒤뜰에 시신 116구…V자 그리던 러시아 [1분 현지영상]

등록 2022-06-16 10:35수정 2022-06-16 19:03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8)
신부 안드리이가 증언한 부차의 한 달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 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 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2년 2월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곧바로 수도인 키이우를 향해 진격했다. 러시아군의 수도 포위 계획이 성공하려면 키이우로 가는 길목인 작은 도시 ‘부차’(Bucha)를 지나야 했다. 3월3일 부차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키이우 일대에서 물러나기까지 한 달가량 이 도시에 머물렀다.

러시아군이 퇴각하고 나고 난 뒤 부차에서는 수백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워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졌다. <한겨레>는 이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부차 시민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한다. 부차시 우크라이나 정교회 안드리이 할라빈(46) 신부를 만났다.

27년째 부차시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성당을 지키고 있는 안드리이 할라빈 신부(49)는 부차 시민 중 러시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가장 많이 본 이들 중 하나다.

“묘지가 도시에서 한참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임시로 교회 뒤뜰에 사람들을 묻었어요.”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에서 안드리이 신부가 학살 당시 상황을 &lt;한겨레&gt;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안드리이 신부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 심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에서 안드리이 신부가 학살 당시 상황을 <한겨레>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안드리이 신부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 심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오후 <한겨레> 취재진과 만난 안드리이 신부는 직접 찍은 동영상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3월10일에 찍은 영상입니다. 러시아군은 이게 다 가짜라고 하는데, 러시아군이 도시 전체를 점령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걸 어떻게 꾸며낼 수가 있겠습니까? 사체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었어요. 당시에 병원 직원들과 장례업체 사람들이 와서 사람들을 묻는 걸 도왔어요.”

러시아군이 부차시를 점령한 지 8일째 되던 날이었던 3월10일, 마을에서는 러시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부차시 주민들의 주검 일부를 수습해 이 교회 뒤뜰에 묻었다. 이곳에 묻혔던 시신은 모두 116구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인 4월 초 부차시는 이들을 정식 묘지로 옮겼다. 점령 초기 일부 러시아군이 눈감아줬거나, 러시아군의 눈을 피해 겨우 수습하거나 병원 영안실에 있었던 주검들이었다.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 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 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죽은 가족을 수습하고 싶어도 묘지까지 갈 수가 없었어요. 병원 영안실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교회 뒤뜰이 사람들을 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군은 매장을 금지했고 묻히지 못한 이들은 길에 그대로 방치됐다. 일부 주민들은 러시아군 몰래 가족의 주검을 거둬 집 앞마당에 묻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최전방인 루한스크에서 도망친 엄마와 두 아이도 이 뒤뜰에 묻혔었다. 일가족은 부차로 몸을 피하고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엄마와 아이들이 타고 가던 차가 러시아군이 쏜 기관총에 만신창이가 됐다. “아버지는 살아남았는데 다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부인과 두 아이는 차 안에서 즉사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엄마와 아이가 숨진 타고 있는 차에 불을 질렀다. 이들을 발견했을 땐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교회 뒤뜰에는 초록빛 풀이 자라나고 있다. 사람들이 묻혔던 곳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노랗게 마른 흙이 맨살을 드러낸 곳에 군데군데 잡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높이가 2m 남짓한 십자가가 우뚝 섰다.

지난 3월 초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교회에도 들이닥쳤다. 안드리이 신부는 직접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러시아군이 신부를 ‘조사’하고 성당에 딸린 도서관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그날에 관해 이야기 했다. “아마 돈이나 귀중품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 성 안드리이 페르보즈반노호 정교회 수도원 뒤뜰에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학살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혔었고 현재는 이장된 상태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안드리이 신부는 러시아군이 주민들의 자가용을 빼앗고는 보닛 위에, 그리고 문짝에 “브이(V)”를 그렸다고 했다. ‘브이’는 러시아군이 탈취했다는 상징이었다. “연료가 닳도록 차를 타고 다니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차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군인들 간 치열한 전투 과정의 여파로 망가진 차량이 적지 않지만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파괴한 차는 더 많다고 안드리이 신부는 설명했다.

안드리이 신부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러시아군이 머물던 한 주민의 집입니다. 벽난로가 있는데 그냥 방 한가운데서 불을 피웠어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다 했습니다.”

안드리이 신부는 러시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교회 뒤뜰에 묻혔던 이들, 또는 거리에서 차갑게 식어간 이들이 누군지 잘 안다. 그 중엔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던 청년도 있다.

“러시아군이 주민들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길에서 그런 걸 보는 순간 나도 죽은 목숨이었겠죠. 지난 3월, 아무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부차는 인간 사냥이 벌어지는 ‘사파리’ 같았습니다.”

부차/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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