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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영상: 우크라 현지] “쿵!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이 내 아파트를 날려버렸다”

등록 2022-06-17 14:00수정 2022-06-18 11:05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10)
옥사나가 증언한 부차의 3월
옥사나(41)와 두 딸 키라(9·왼쪽), 보제나(6).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은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포격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부차시에 마련된 임시 주거지 모듈러 하우스 공용주방에서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옥사나(41)와 두 딸 키라(9·왼쪽), 보제나(6).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은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포격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부차시에 마련된 임시 주거지 모듈러 하우스 공용주방에서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2년 2월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곧바로 수도인 키이우를 향해 진격했다. 러시아군의 수도 포위 계획이 성공하려면 키이우로 가는 길목인 작은 도시 ‘부차’(Bucha)를 지나야 했다. 3월3일 부차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키이우 일대에서 물러나기까지 한 달 가량 이 도시에 머물렀다. 러시아군이 퇴각하고 나고 난 뒤 부차에서는 수백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워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졌다. <한겨레>는 이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부차 시민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한다. 두 딸의 엄마이자 임시 주거지인 모듈러 하우스 관리를 맡고 있는 옥사나 폴리슈크(41)가 부차의 3월을 말한다.

옥사나 폴리슈크(41)는 아직도 지난 3월4일 저녁에 일어난 일만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러시아군이 그와 그의 두 딸, 그리고 남편이 사는 부차시에 들어온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옥사나는 그날 침대방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리스 위에서 두 딸, 보제나(6), 키라(9)와 함께 누워 뒹굴고 있었다.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쿵!’ 눈과 코, 벌린 입으로 텁텁한 먼지 같은 것이 잔뜩 들어왔다.

어느 날, 하늘에서 폭탄이 날아왔다

눈을 떴지만 앞이 뿌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강한 물리적 충격이 옥사나와 딸들을 덮쳤다. 하늘에서 날아온 폭탄이 옥사나 가족이 사는 아파트 3층을 뚫고 들어왔다. 옥사나와 그의 남편 안드리이, 그리고 두 딸은 그 아파트 2층에 살고 있었다.

폭탄이 아파트를 명중하면서 그 충격으로 아이들의 2층 침대가 쓰려졌다. 침대 1층에 놓여있던 매트리스가 밀려 바닥에 누워있던 아이들과 옥사나를 덮쳤다. 그 위로 무너진 건물 잔해가 쏟아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방패막이가 돼 줬다. 옥사나와 딸들은 무사했다. 정신을 차린 옥사나가 딸들과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문이 안 열렸다. 남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무너져 내린 벽 아래로 사람들이 아파트를 벗어나려는 모습을 봤다. 옥사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입을 벌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거예요.” 큰 폭발이 났을 때 입을 벌려야 산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폭발 현장에서 입을 벌리면 고막 파열 등 부상을 막을 수 있다. “먼지가 잔뜩 들어가서 나흘 동안 기침을 했어요. 먼지를 토해냈어요.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옥사나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2층 침대 매트리스를 바닥에 내려놓은 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다. 옥사나와 두 딸 모두 무사했는데, 부엌에 있던 남편이 좀 다쳤다. 폭탄인지, 부서진 시멘트인지 부서진 무언가의 파편이 남편의 머리를 때렸다. “목숨을 건진 게 어딘가요.” 폭탄이 관통한 3층에는 당시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파트는 산산조각 났다. 외벽이 날아갔고, 창문은 다 깨졌다. “오늘도 아파트가 계속 내려앉고 있어요.” 15일 부차시의 임시 주거지인 모듈러 하우스에서 만난 옥사나가 말했다.

폭발 다음 날인 5일 옥사나 가족은 부서진 집에 올라가 매트리스를 끌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잔해에 깔려있던 고양이를 구한 것도 그때였다. 3월9일 부차를 떠나기 전까지 무너진 아파트 지하실에서 지냈다. 주민들 150명이 함께 있었는데 그중 40명이 어린아이들이었다. 지하실에 있을 땐 온몸이 자기 몸이 멍투성이인지도 몰랐다. 상처를 발견하기에 지하실은 너무 어두웠다. 추위로 껴 입은 옷 안에 상처와 멍은 가려졌다. 닷새 뒤 키이우로 탈출하고 난 뒤 몸을 씻을 때 여기저기 멍이 들고 다친 것을 알았다. 추위와 두려움에 덜덜 떨었던 그 시간 동안은 아무런 통증도 못 느꼈다.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이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포격했다. 포격 직후 옥사나 가족이 머물던 아파트 침실 모습. 옥사나 제공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이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포격했다. 포격 직후 옥사나 가족이 머물던 아파트 침실 모습. 옥사나 제공

부차에서 키이우까지…숨 막혔던 9시간

아파트에 폭탄이 날아오고 닷새 뒤인 3월9일. 곧 인도 회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시청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냥 자기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봤다.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옥사나 가족도 차를 타고 뒤따라 갔다. 옥사나네 자가용은 아파트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앞유리가 깨지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제각각 차를 타고 줄지어 키이우로 향했다. 차량 수백 대가 함께 이동했다. “다들 너무 무서워서 아주 천천히 갔어요. 차 문은 날개처럼 다 열어놨습니다. 하늘에서 또 뭔가 떨어지면 바로 탈출해야 하니까요.”

러시아군의 탱크가 지나갈 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옥사나는 러시아군이 탱크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자가용을 짓밟고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요. 마비된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거북이 기어가듯 키이우로 향했다. 부차에서 키이우까지 30km. 그러나 9시간이 걸렸다.

키이우 도심 우크라이나군 관할 지역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땅에 입을 맞췄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옥사나는 부차에서 탈출한 뒤 한참 동안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충격이 가시지 않았어요.” 차 소리, 사람들의 소리, 모든 종류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음악도 들을 수 없었다. 2주쯤 지났을까. 그제야 전쟁 상황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울었다.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이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폭격했다. 포격 직후 옥사나 가족이 머물던 아파트 모습. 옥사나 제공
지난 3월4일 러시아군이 옥사나 가족이 살던 우크라이나 부차의 아파트를 폭격했다. 포격 직후 옥사나 가족이 머물던 아파트 모습. 옥사나 제공

다시 부차로…“3월의 악몽 자꾸 떠올라”

옥사나는 키이우를 거쳐 상대적으로 안전한 빈니차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지난 5월19일 부차로 돌아왔다. 러시아군은 3월 말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퇴각했다. “아직도 잠을 잘 못 자요.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더니 알약을 주더라고요. 안정제랑 수면제,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했어요.” 동네를 돌아다닐 때면 발작이 왔다.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시에서 집이 아니라 돈으로 보상을 해주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부차에 살기 싫어요. 자꾸 그날이 떠올라요.” 아는 사람 많고 친한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익숙한 동네지만 부차에서의 삶은 지난 3월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어떠냐고요? 처음보단 나아졌어요.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해요.”

15일 부차 임시 주거지에서 만난 옥사나는 취재진에게 러시아군을 만났을 때 ‘요령’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러시아군 저격수들은 뛰는 사람을 쏩니다. 러시아군을 보면 그냥 뒤로 물러나서 멈춰 있거나 바닥에 엎드려 기어가야 해요. 총을 쏘기 시작하면 몸을 숨기고 총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니면 엎드려서 머리로 손을 감싸요. 러시아산 다연장로켓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몇 개가 발사됐는지 셀 줄 알아요. 박격포가 날아올 땐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나요.” 옥사나의 생존법이다.

부차/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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