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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최전선 돌아갈 남편과 ‘두번째 결혼식’…“이 악몽 어서 끝나길” [우크라 현지]

등록 2022-06-17 05:01수정 2022-06-17 14:50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9)
격전지 루한스크서 온 남편
마지막이 될지 모를 짧은 휴가
16년 함께한 아내와 성당으로
함께한 지 16년이 된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루한스크에서 복무 중인 유리는 열흘 휴가를 받아 부차에서 올하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휴가가 끝나면 그는 다시 국경으로 간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함께한 지 16년이 된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루한스크에서 복무 중인 유리는 열흘 휴가를 받아 부차에서 올하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휴가가 끝나면 그는 다시 국경으로 간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하느님께 기도하세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최전방에서 복무 중인 유리(44)는 열흘간 휴가를 받아 집에 왔다. 부부는 이번 휴가 때 미뤄뒀던 일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14일(현지시각) 오후 2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북쪽으로 30㎞ 떨어진 부차시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성당)에서 부부로 16년을 함께한 유리와 올하가 ‘두번째 결혼식’을 치렀다.

안드리 할라빈 신부(맨 왼쪽)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에서 올하(앞줄 가운데)와 유리의 혼인성사를 집전하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안드리 할라빈 신부(맨 왼쪽)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에서 올하(앞줄 가운데)와 유리의 혼인성사를 집전하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유리는 결혼식에 군복을 입고 등장했다. 그는 결혼식장을 찾은 <한겨레> 취재진에게 “현재 최전선에서 복무하는 중”이라며 “(식을 마치고) 곧 전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군복의 오른쪽 가슴에는 우크라이나어로 ‘국경 경비대’라고 쓴 와펜이 붙어 있다. 올하는 새하얀 드레스에 꽃을 수놓은 미사수건을 썼다.

“결혼을 축하해요. 두분의 삶이 평화롭고 화목하기를 빕니다.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인내심을 주시기를. 행운을 빌게요.” 두 사람의 혼인성사를 집전한 안드리 할라빈(49) 신부가 말했다. “살아가는 동안 좋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은 운명을 함께하듯, 포도주 한잔을 나눠 마셨습니다. 그 운명은 포도주처럼 달콤하거나 씁쓸할 수 있습니다.”

안드리 신부는 올하의 왼손과 유리의 오른손을 흰 천으로 묶었다. 오래된 부부답게 둘의 네번째 손가락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반지가 끼여 있었다. 결혼식 내내 긴장한 듯한 모습이던 두 사람은 10분 남짓한 결혼식을 마친 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이미 16살 난 아들이 있다.

부부로 16년을 산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성경책 위에 함께 손을 올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부부로 16년을 산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성경책 위에 함께 손을 올리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두 사람이 두번째 결혼식을 앞당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월 말 터진 전쟁이었다. 첫번째 결혼식을 교회에서 치르지 않았던 올하는 하루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최전선에 남편을 보내게 되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려 혼인성사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사랑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입맞추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올하(35)와 유리(44)가 14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성 안드리 페르보즈반니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입맞추고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루한스크 전황은 점점 악화…이제 또다시 기약없는 이별이

하지만 유리가 복귀해야 하는 루한스크주의 전황은 점점 악화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15일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루한스크주 서부 도시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러시아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한 채 도시 사수를 위한 전투를 이어갔다. 이 도시의 군정 책임자인 올렉산드르 스트류크는 러시아군이 도시 내 여러 곳에서 동시에 공격하고 있지만 막아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 방송에 나와 인근 도시 리시찬스크와 연결되는 다리가 모두 끊겼지만, 시내의 군이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황이 어렵지만 안정된 상태이며 주민들의 탈출 경로도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시가전이 시작돼 도시 안에 갇힌 주민 1만2천여명의 운명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수석 보좌관은 9일 우크라이나 병력이 날마다 100~200명씩 전사하고 있다고 밝혔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14일 세베로도네츠크 주변에서 “고통스러운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15일 연설에선 “전쟁이 시작된 112일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전쟁터에서 장비와 병력에서 우세한 러시아와 맞서 용기와 지혜를 보여줬다”고 항전을 독려했다.

앞날을 기약하기 힘든 이별을 앞둔 부부의 마음은 어떨까. 유리는 “결혼식을 마치니 안심이 된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고, 올하는 “언젠가 이 악몽이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신랑 유리가 외쳤다. 올하가 남긴 말은 뜻밖이었다. “남편이 고향으로 휴가를 나올 수 있어서 기뻤어요. (두번째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행복해요.”

부차/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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