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전투에서 전사한 우크라이나 아조우 연대 소속 병사의 주검을 실은 관을 든 행렬이 30일 슬로우얀스크에서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바흐무트 등 동부 돈바스의 격전지 주변에서 의미 있는 군사적 성과를 올리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체적인 전황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동요하는 서구 주요국의 반응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30일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포위하고 주변 도시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남부 헤르손과 동북부 하르키우 지역에도 포격을 가하며 조금씩 진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11월 우크라이나군이 동북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주에서 대규모 진격에 성공한 뒤 바흐무트 등 돈바스 지역에서 격전이 이어지며 한동안 교착 상태가 이어져왔다. 특히 ‘고기 분쇄기’란 악명이 붙은 바흐무트를 둘러싼 격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모두에서 희생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용병 그룹 ‘바그너(와그너) 부대’ 등을 앞세운 러시아가 지난 25일 바흐무트 코앞의 솔레다르를 점령한 뒤 남서쪽으로 100㎞ 떨어진 부흘레다르 등에서도 공세를 펼치며 전선을 확대하는 중이다.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수장은 30일 <로이터>에 러시아군이 부흘레다르에서 교두보를 확보했다며 도네츠크시 서쪽의 바흐무트~마리인카~부흘레다르로 이어지는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의 전투도 격화되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은 전날 바흐무트 북쪽 블라호다트네를 확보했다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을 격퇴했다고 맞섰다.
하지만 돈바스의 격전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뉴욕 타임스>, <시엔엔>(CNN) 등 주요 미국 언론들은 바흐무트가 러시아군에 점령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전했고,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 도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돼 북서 방향으로만 통로가 열려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방문해 “러시아가 큰 보복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29일 연설에선 도네츠크 전선 상황이 “매우 어렵다”며 “바흐무트, 부흘레다르 등 도네츠크의 지역들이 계속적인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고, 우리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바흐무트의 지휘관인 데니스 야로슬라우스키는 <시엔엔>에 “우리 사령부가 바흐무트에서 철수를 결정한다면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목적일 것”이라며 “슈퍼 전력”의 러시아 정규군이 와그너 용병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려 퇴각했던 남부 헤르손, 동북부 하르키우 등에서도 공세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30일 러시아군이 남부 자포리자와 헤르손의 40개 이상 마을에 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하르키우에서도 러시아군이 미사일을 쏴 4층짜리 주거용 건물이 파괴되고 최소 1명이 숨졌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겨울 혹은 봄에 대규모 공세에 나선다면 우크라이나 중부 쪽으로 나아가는 통로인 자포리자 지역을 겨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구 언론들은 최근 진행된 이 같은 변화로 전황이 다시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서구 국가들이 “시간은 러시아 편’”이라며 “인력과 자원을 계속 적극적으로 쏟아붓는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이 장기 소모전에서 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구 언론들이 우크라이나 전황을 평가할 때 자주 인용하는 워싱턴의 ‘전쟁연구소’(ISW)도 “지난해 필요한 무기를 전달하지 못한 서구의 실패가 지난해 11월 이후 우크라이나의 (추가) 진공을 막은 주된 이유”라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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