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을 가득 태운 배가 14일(현지시각) 그리스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사진은 배가 가라앉기 전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찍은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각) 그리스 앞바다에서 밀항선이 침몰해 적어도 79명이 숨졌다. 그리스 정부는 몇십년 만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해양 사고라며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이날 사람들을 가득 태운 작은 고깃배가 그리스 필로스에서 남서쪽으로 80㎞ 떨어진 바다에서 뒤집힌 뒤 가라앉았다고 밝혔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적어도 79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구조되어 인근 항구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구조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리스 당국은 배가 전복되기 전 인근 공해상에서 발견하고 여러 차례 위성전화로 접촉했으나 그때마다 “이탈리아로 가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없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배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출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배에서 그리스 해양경비대에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왔으며, 얼마 안 지나 배가 뒤집히고 불과 10~15분 만에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리스 당국은 즉각 구조대를 파견했으나, 강한 바람으로 수색과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겼었다.
해상 이주민 긴급지원 단체인 ‘알람 폰’은 “사고 전에 이들 배가 곤경에 빠졌다는 걸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알았다”며 그렇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그리스가 자신들을 거부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접촉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당시 배에 500~700명 정도 타고 있었으며, 주로 20대 남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 해안경비대원은 현지 언론에 “배의 갑판에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현지 보건 담당자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배의 허용치를 훨씬 넘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국적은 당장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로 시리아와 파키스탄, 이집트인들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당국이 밀항 업자로 의심되는 세 명을 붙잡아,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 대통령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는 구조된 생존자들을 찾아가 숨진 이들에 대한 조의를 밝혔다.
해마다 지중해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남부 이탈리아 쿠트로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적어도 94명이 숨졌다.
그리스 이민부의 한 당국자는 “정말로 곤경에 처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밀항업자에게 돈 주고 오는 사람들은 가려내기 위해” 유럽연합(EU) 차원의 건실한 이주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누가 유럽에 올지 밀항업자들이 결정하는 형국”이라 “유럽연합이 나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난민 지위를 주어 돕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키프로스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연합이 나서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리스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요 길목 중 하나이며, 지난달엔 그리스 당국이 해상에 표류한 배를 강제로 밀어내는 영상이 공개되어 국제적 비판을 받았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올해 유럽에는 벌써 7만명이 넘는 난민과 이주민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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