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대가 최루탄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유리창을 깨지 마세요. 버스와 학교를 부수지 마세요. 우리는 사태가 진정되길 원합니다.”
지난달 27일 교통검문 도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알제리계 소년 나엘 메르주크(17)의 죽음에 대한 항의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된 가운데, 그의 할머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엘의 할머니는 2일(현지시각) 프랑스 방송 <베에프엠>(BFM)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손자의 죽음에 분노해 매일 거리로 나서고 있는 시위대에 자제를 당부했다. “아이를 죽인 경찰에 매우 분노합니다. 하지만 모든 경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법 체제를 믿습니다.”
나엘의 다른 유족도 영국 <비비시>(BBC)와 만나 “이 모든 상황은 나엘을 위한 게 아니다”라며 계속되는 혼란으로 가족이 함께 앉아 추모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시민들이 함께 나엘을 추모하며 거리를 걷는 평화 시위였다. 하지만, 나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경찰의 총기 사용과 관련해선 “교통검문을 할 때 정지를 거부할 경우 경찰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을 당장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에선 2017년 법을 바꿔 경찰의 총기 사용을 폭넓게 허용한 뒤 나엘의 죽음과 같은 사건이 잇따르는 중이다.
피해자의 가족까지 나서 시위 자제를 호소한 것은 항의 시위가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일 그동안 상점·학교·관공서를 대상으로 공격을 이어오던 시위대가 이날 새벽엔 파리 남쪽에 위치한 라이레로즈시의 뱅상 장브룅(39·중도 우파 공화당 소속) 시장의 자택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5살·7살 두 아이를 데리고 뒷마당으로 달아나던 시장의 아내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3개월 정도 치료가 필요한 수술을 받았다. 장브룅 시장은 성명을 내어 “(시위대가) 집에 불을 내서 위층에서 자고 있던 가족들을 죽이려다가 차에 불이 붙었다. 어젯밤 공포와 불명예가 극에 달했다”고 밝혔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오른쪽)와 뱅상 장브룅 라이레로즈 시장(왼쪽)이 2일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라이레로즈 시장의 자택은 이날 새벽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고 시장의 아내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AFP 연합뉴스
외신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경찰의 지속적 폭력에 노출돼온 이민자 청년들의 불만이 다시 폭발한 것이라고 짚었다. 2005년 가을 이번과 똑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들의 “교육과 고용의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아나이스라고 밝힌 나엘의 이웃은 <비비시>에 프랑스 교외에서 젊은 흑인이라는 것은 매일 인종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경찰은 모욕하고 또 모욕하며 제대로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죽이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시민 옴부즈맨 기관 권리옹호위원회(Défenseur des Droits)는 2017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흑인 또는 아랍인으로 인식되는 젊은 남성’이 경찰의 신분 확인을 받을 확률이 나머지 인구에 비해 20배 높다고 집계했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3월 자료를 보면, 프랑스 인구 가운데 이민 1세대의 비율은 10.3%(2021년 현재)로 확인된다. 이들이 낳은 이민 2세까지 합치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마음에 깊은 어둠을 안고 살고 있는 셈이다.
이민자 문제가 사회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한 프랑스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일 밤 특별안보회의를 열었고, 3일엔 양원 의장, 4일엔 시위의 영향을 받은 전국 220개 도시 시장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이번 시위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 상세하고 장기적인 평가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내무부는 2일 전국에서 4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체포자 수가 1일(719명)과 지난달 30일(1300여명)에 견줘 크게 줄어 일단 시위의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