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저녁, 인부들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명품 상점에 붙어 있던 철제 보호벽을 제거하고 있다. 파리/노지원 특파원
4일(현지시각) 저녁 9시,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 여럿이 명품 상점 앞 유리를 감싸고 있던 철제 보호벽을 하나씩 뜯어냈다. 지난달 27일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 메르즈쿠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뒤 거세게 이어지던 항의 시위가 한풀 꺾이자 영업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 것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1층 쇼윈도에 보석을 전시할 겁니다.”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 있는 한 보석 가게 직원은 “오늘 보석 상품을 둘러보고 싶으면 2층으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이 상점은 시위로 인한 도난 피해를 막기 위해 1층 창가에 진열하던 보석을 지난 며칠 동안 2층으로 치워놨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상점 문을 부수고 들어가 물건을 약탈했기 때문이다.
거칠고 과격하게 이어지던 시위는 나흘째였던 지난달 30일 하루 체포 인원이 1300명에 달하며 정점을 찍었다. 나엘의 장례식은 1일 치러졌고,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24시간 동안 체포된 이는 72명으로 줄었다.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시위대가 자동차·쓰레기통에 불을 붙이고 경찰서 등을 공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강 상태에 접어든 모습이다. 프랑스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난주 전국에 배치한 경찰 병력 4만5천명을 그대로 유지 중이다. 이번 시위로 자동차 5900여대, 건물 약 1100채가 불 타거나 훼손됐다. 프랑스 보험사 연맹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 동안 접수된 보험금 청구 건수는 5900여건,액수는 2억8천만유로(약 4000억원)에 달한다.
4일(현지시각) 저녁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풍경. 1.5km 남짓한 샹젤리제 명품 거리 양쪽에는 아직도 당국이 설치한 울타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파리/노지원 특파원
일부에선 보호벽을 철거하며 영업을 다시 시작하려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상점들이 입구를 나무 판자나 철판 등으로 막아 두고 있었다. 그 위에 누군가가 “경찰이 (사람을) 죽인다. 경찰을 어디에나 있다.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는 낙서를 적어뒀다. 1.5㎞ 남짓한 샹젤리제 명품 거리 양쪽에도 여전히 경찰이 설치해 둔 울타리가 길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곳곳에 경찰차가 눈에 띄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거리엔 침묵과 긴장감이 내려 앉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장 240여명과 엘리제궁에서 만나 “시위가 영구적으로 평온한 상태로 접어든 것인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지난 며칠 동안 목격한 수준의 정점은 지났다”며 “이런 사건을 초래한 더 깊은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힘들고 장기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 국경절인 7월14일 전후와 향후 몇달 간 “경계 태세를 유지해달라”고 지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엔 파리 17구에 있는 경찰서를 방문해 경찰관을 격려했다. 상·하원 의장을 만나 의회 차원의 대응 방안도 논의했다.
4일(현지시각) 저녁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보석 가게의 진열장이 텅 비어 있다. 파리/노지원 특파원
다만 이날 <르 파리지앵>과 인터뷰에선 기물 파손이나 강도 행위로 체포된 미성년자의 부모에게 즉각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4천명이 체포됐다. 이 가운데 1200명 이상이 미성년자다.
기업들은 정부가 시위로 피해를 입은 기업을 위해 긴급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루노 르메르 재무장관은 4일 정부가 폭동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다시 일어서는 동안 이들에게 세금 납부 유예 등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권단체와 좌파 진영 쪽에서는 프랑스 경찰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적 관행을 지적하며 제도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파리/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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