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외정보국(M16)의 리처드 무어 국장이 2021년 11월 런던에서 열린 국제전략연구소(IISS)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의 최고위 정보기관 책임자가 지난달 발생한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이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타협했다”고 말했다.
리처드 무어 영국 해외정보국(M16) 국장이 19일(현지시각)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언론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했다. 정보기관 책임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어 국장은 당시 쿠데타가 일어났던 상황에 대해 “푸틴이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리고진은 그의 창조물이며 전적으로 푸틴이 만들어낸 인물인데, 푸틴에 맞섰다”며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푸틴은 프리고진과 맞서 싸우지 않았고, 벨라루스 대통령의 주선을 이용해 곤경을 벗어나려고 타협했다”고 말했다. 당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중재로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이 면죄부를 받는 조건으로 철군하는 데 합의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무어 국장은 또 “그날 아침 프리고진은 배신자로 출발했는데 저녁 때 용서받았고, 며칠 뒤엔 차 마시는 자리에 초대됐다“며 “해외정보국 국장도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가는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먹기 조금 어렵다”고 말했다. 바그너 그룹의 운명에 대해선 “분명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다시 개입할 것 같진 않다”고 내다봤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교 장관도 이날 푸틴 대통령의 상황과 관련해 “푸틴이 어떻게 하려고 하든지, 쿠데타 시도는 좋은 그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 엘리트들 간 암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상황이 잘 되어가지 않는다는 징후”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옛 소련이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압력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듯이 “비슷한 일이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