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 겸 국민과 대화 ‘올해의 결과’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고 중립적 국가로 만드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평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또 한번 해를 넘기게 된 가운데 미국 주요 언론이 러시아가 물밑 채널을 통해 휴전을 타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3일 복수의 전·현직 러시아 및 미국 당국자 등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물밑 외교 채널을 통해 자신들이 미국에 ‘협상을 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부터 일종의 ‘중개인’을 통해 자신의 야심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현재 형성된 전선을 따라 전투를 동결하는 방식의 휴전에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지난 19일 러시아군 지휘관들을 만나 우크라이나가 사면초가 상태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우리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협상을 원한다면, 협상하도록 내버려두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실명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런 말을 한 이들이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과 가까운 익명의 전직 러시아 고위 관리 2명과 러시아 대통령 특사에게 메시지를 받은 미국 등 복수의 당국자라고 전했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는 전쟁에서 위험을 낮추는 선택지를 만들려 한다고 전했다. 대중 앞에서는 호전적이고 격렬한 수사를 쏟아내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재 국면에서 ‘전쟁 승리’를 선언한 뒤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을 절대 지지하는 러시아 내 여론을 보면 러시아인들 역시 그가 어떤 식으로든 승리를 선언하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과 관련해선 두번의 ‘결정적 국면’이 있었다. 첫번째는 전쟁 직후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말 침공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3월 튀르키예의 중재로 이스탄불에서 평화협상을 위해 여러차례 머리를 맞댄 바 있다. 하지만 4월 초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대학살’이 공개되며 협상의 불씨는 사그라들었다.
상황이 다시 움직인 것은 지난해 8~9월 우크라이나가 북동부 전선에서 큰 군사적 성공을 거둔 뒤였다. 러시아는 지난해 9~10월 이미 점령 중이던 우크라이나의 4개 주(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를 영토에 편입하는 조처를 마치는 동시에 휴전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전 영토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더 굳건히 하며 협상은 멀어져갔다.
다시 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 6월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대공세가 성과를 내지 못한 뒤다. 미국의 전·현직 관리들은 신문에 푸틴 대통령이 현재의 교착된 전황, 공세 실패 이후 우크라이나를 덮친 후유증, 서방의 지원 감소, 가자 전쟁 등으로 인한 혼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협상을 위한 ‘적절한 순간’이 오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에 그런 휴전 가능성에 대해 “부정확하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고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오로지 우리 목표 달성을 위해서만 준비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최근 미국 등에 제시했다는 휴전 제안은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4개 주를 자국 영토로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상실한 모든 영토 회복’이라는 목표를 꺾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아 보인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 모든 움직임이 크렘린의 시도일 뿐 푸틴 대통령의 협상 의지를 반영하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올해부터 동방 정교회 전통에 따른 1월7일이 아닌 12월25일을 예수 탄생일로 공식 기념하기로 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 변화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없애려고 하는 시도인 동시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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