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 중심가에 위치한 국회 의사당 앞에서 급진성향의 노동조합인 에스에이시(SAC) 소속 1천여명의 회원들이 “실업수당에 손대지 말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에스에이시는 이날 스웨덴 전국 19개 지역에서 동시집회를 열고 우파 정부의 실업수당 축소 방침에 항의했다. 스톡홀름/글·사진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우파 집권 60일 스웨덴을 가다
정책 구조조정 진통 있지만 ‘효율적 복지’ 우려보다 기대감
정책 구조조정 진통 있지만 ‘효율적 복지’ 우려보다 기대감
지난 15일 오후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중심가는 경찰차들의 잇따른 사이렌 소리에 긴장감이 흘렀다. 생디칼리슴(조합주의) 계열 노조인 스웨덴노동자중앙기구(SAC)가 조직한 대정부 항의시위 때문이었다. “실업보조금에 손대지 마라!” 시 북쪽의 메드보르가르플랏센역 광장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대는 우파 정부의 새 정책에 항의하는 내용의 붉은색 펼침막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지난 9월 총선승리로 집권한 우파 연합정부의 실업보조금 축소 계획이 발단이 됐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사벨 크라페달은 “정권이 바뀐 뒤 그동안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살던 사람들은 비상이 걸렸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약속했듯이 스웨덴 복지모델의 근본은 유지하면서 좀더 효율화하고, 놀고 먹는 사람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으냐는 것이다. 앞날에 대한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지난 9월17일 스웨덴 총선에서 신온건당의 프레드리크 레인펠트가 이끄는 4개 우파 정당들이 사회민주당을 꺾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당시 국내 보수진영은 (전 국민 대상의 완벽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특징으로 하는) 스웨덴 모델이 ‘사망선고’를 받았다거나, 노무현 정부의 성장-분배 병행전략의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정말 스웨덴 모델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인사들은 좌우, 노사를 막론하고 “(스웨덴 모델의 사망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혜택은 줄겠지만 스웨덴 복지모델의 근간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우파 정부가 추진하는 새 정책은 다양하다. 정부의 새 일자리 제안을 거부하는 실업자들에겐 보조금을 깎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실업보험료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실업 예상자들을 재교육시키면서 주는 보조금(리크루트 그란트)도 축소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정부보조금이 지원되는 노조회비도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소득의 80%를 주는 병가수당도 결국 수술대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사벨은 “병가는 실업보조금에 못지 않게 아주 예민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득세 인하와 고용주세 완화 등 감세정책도 추진 중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공부문도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교육 쪽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새 정부는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 때 한번만 보던 국가시험을 3·5학년 때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을 강화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새 정책 반응 엇갈리지만 “근본적 변화 없다” 공감대
내년 단체협상 긴장고조 제2 사회적 대타협 주목
우파정부의 새 정책에 대한 반응은 이해집단에 따라 엇갈린다. 노동계는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과 미국식 근로빈곤층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교육계도 “(새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우익적”이라며 우려한다. 반면 재계는 기업 부담을 줄이고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색이다. 이런 견해차에도 좌와 우, 노와 사를 불문하고 의견일치를 보이는 게 있다. 스웨덴 복지모델의 근간은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스웨덴기업연합의 경제분석가인 파비안 발렌은 “새 정부는 일하는 사람들이 대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지만, 선거 때 약속했듯이 전체 복지시스템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비스분야의 기업단체인 알메가의 앤더 옐츠만 변호사도 “노조 조직률이 80%에 이르는 상황에서 어느 정부도 국민 다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교육청의 교육보조국장으로 있는 황선준 박사는 “이번 정권교체는 사민당의 장기집권에 따른 오만에 국민이 식상한데다, 우파가 기존 복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게 주효했기 때문”이라며 “가난한 집 아이들도 무상으로 대학에 갈 수 있고, 갑자기 병이 나도 2만원 정도면 세계 최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어느 국민이 포기하겠느냐”고 말했다. 사민당 국회의원인 크리스티나 액셀손도 “스웨덴 모델이 장기적으로는 변하겠지만, 현 정권 4년 동안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모델의 변신은 이미 사민당 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개혁 없이는 스웨덴모델의 유지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구축됐다. 관건은 개혁의 폭과 속도, 그리고 주도권의 문제였던 셈이다. 식당업을 하는 한 교포는 “총선 이후 한국에서 몇몇 보수신문들이 취재를 왔는데, 모두들 실제 보고 들은 것은 제쳐두고 자기들 멋대로 스웨덴 모델에 사망선고가 내린 것처럼 왜곡보도를 해 교민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스웨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기대와 불확실성이 교차했다. 남스톡홀름대의 호트 교수는 “좌우협력이 이뤄지고 있어 전망이 매우 밝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내년 봄의 대규모 단체협상을 앞두고 벌써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노총은 내년 임금인상률 목표를 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3.9%로 제시했다. 기업들은 노조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이런 터에 스웨덴노총의 바니아 룬드뷔베딘 위원장이 최근 “제2의 샬트셰바덴협약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스웨덴 노사는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위기를 맞자 지난 1938년 노사자율로 협약을 체결했다. 핵심내용은 사회 전체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업이나 직장폐쇄 같은 극단적 행동은 노사가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스웨덴은 이를 통해 평화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장기간 번영을 구가했다. 스웨덴은 또 한번 격변의 길목에 서 있다. 위기 때마다 대타협을 통해 공멸보다 공존을 택한 스웨덴 국민들의 지혜가 어떻게 발휘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내년 단체협상 긴장고조 제2 사회적 대타협 주목
지난 9월17일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한 이후 새로 구성된 스웨덴 국회 내부 모습. 스웨덴 국회 제공
우파정부의 새 정책에 대한 반응은 이해집단에 따라 엇갈린다. 노동계는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과 미국식 근로빈곤층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교육계도 “(새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우익적”이라며 우려한다. 반면 재계는 기업 부담을 줄이고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색이다. 이런 견해차에도 좌와 우, 노와 사를 불문하고 의견일치를 보이는 게 있다. 스웨덴 복지모델의 근간은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스웨덴기업연합의 경제분석가인 파비안 발렌은 “새 정부는 일하는 사람들이 대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지만, 선거 때 약속했듯이 전체 복지시스템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비스분야의 기업단체인 알메가의 앤더 옐츠만 변호사도 “노조 조직률이 80%에 이르는 상황에서 어느 정부도 국민 다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교육청의 교육보조국장으로 있는 황선준 박사는 “이번 정권교체는 사민당의 장기집권에 따른 오만에 국민이 식상한데다, 우파가 기존 복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게 주효했기 때문”이라며 “가난한 집 아이들도 무상으로 대학에 갈 수 있고, 갑자기 병이 나도 2만원 정도면 세계 최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어느 국민이 포기하겠느냐”고 말했다. 사민당 국회의원인 크리스티나 액셀손도 “스웨덴 모델이 장기적으로는 변하겠지만, 현 정권 4년 동안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모델의 변신은 이미 사민당 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개혁 없이는 스웨덴모델의 유지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구축됐다. 관건은 개혁의 폭과 속도, 그리고 주도권의 문제였던 셈이다. 식당업을 하는 한 교포는 “총선 이후 한국에서 몇몇 보수신문들이 취재를 왔는데, 모두들 실제 보고 들은 것은 제쳐두고 자기들 멋대로 스웨덴 모델에 사망선고가 내린 것처럼 왜곡보도를 해 교민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스웨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기대와 불확실성이 교차했다. 남스톡홀름대의 호트 교수는 “좌우협력이 이뤄지고 있어 전망이 매우 밝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내년 봄의 대규모 단체협상을 앞두고 벌써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노총은 내년 임금인상률 목표를 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3.9%로 제시했다. 기업들은 노조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이런 터에 스웨덴노총의 바니아 룬드뷔베딘 위원장이 최근 “제2의 샬트셰바덴협약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스웨덴 노사는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위기를 맞자 지난 1938년 노사자율로 협약을 체결했다. 핵심내용은 사회 전체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업이나 직장폐쇄 같은 극단적 행동은 노사가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스웨덴은 이를 통해 평화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장기간 번영을 구가했다. 스웨덴은 또 한번 격변의 길목에 서 있다. 위기 때마다 대타협을 통해 공멸보다 공존을 택한 스웨덴 국민들의 지혜가 어떻게 발휘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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