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와 방공 무기 체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초당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이 방안에 선을 그어왔으나, 러시아가 폴란드 접경 지역에까지 공습을 가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자 미 정치권의 반응도 강경해지는 모습이다.
롭 포트먼 상원의원(공화당)은 1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에 미그-29기 전투기를 제공하겠다는 폴란드의 제안을 미국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폴란드 접경 지역에서 <시엔엔>(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미 우크라이나에 지난 1월에도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와 군용 헬기를 제공했다면서 “그것들은 미국에서 직접 보낸 것이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아닌) 폴란드가 소련식 중고 미그-29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요청하는 것은 그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전투기 제공을 주장했다. 포트먼 의원은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미 미국의 다른 형태의 무기 지원도 긴장고조 행위라고 선언했으니 전투기를 보낸다고 해서 충돌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앞서 폴란드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옛 소련제 미그-29기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주는 대신 미국이 폴란드에 F-16 같은 미국산 전투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확전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은 전투기 운송상의 문제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
포트먼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의 에이미 클로버샤, 리처드 블루멘털 의원, 로저 위커 공화당 의원 등 4명이 이날 함께 폴란드를 방문했다. 모두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에 공중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클로버샤 의원은 <시엔엔>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를 비판하지는 않으면서도, 꼭 미그-29기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 지원과 관련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된 얘기도 있을 수 있다며 “나는 어느 순간엔가 전투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동수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로 총 58명인 의회 문제해결 코커스도 13일 성명을 내어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의 전투기 제공을 돕고, 드론이나 지대공 미사일 등 다른 방공 시스템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군사 지원을 못 받으면 러시아가 곧 공중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이같은 의회의 요구는 러시아가 공격적 태도를 강화하는 가운데 터져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13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폴란드 접경지대에 있는 군사기지에 공습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최소 35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향한 포위와 진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뒤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장비와 추가 경제 원조를 요청했다는 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백악관은 우크라이나 안에서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전투기 지원에 선을 긋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공격이 폴란드나 다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으로까지 확대되면 나토 동맹군이 총동원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신 유럽에 배치된 미군의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 등을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지난 12일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싣고 가는 미국과 나토의 호송대는 러시아의 “합법적 공격 목표물”이 된다고 경고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비행기가 못 들어오도록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와 직접적 충돌과 확전 가능성을 우려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 연설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적 충돌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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