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대피 장소로 쓰이다가 지난 16일 러시아군의 폭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극장 건물. 민간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공개한 19일 촬영 위성사진(오른쪽)에서 건물 외곽 바닥에 “어린이들”이라고 쓴 흰 글씨가 폭격 이전(왼쪽)과 마찬가지로 선명하게 보인다. <시엔엔>(CNN) 화면 갈무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곳에서 우크라이나군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마리우폴은 친러 분리주의 반군 장악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과 2014년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20일 <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마리우폴시 당국은 시민 400여명이 피신해 있던 예술학교가 전날인 19일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됐으며 무너진 건물 안에 사람들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로 아이와 여성 그리고 고령자가 이 예술학교에 대피 중이었다고 시 당국은 밝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탱크와 포격, 모든 종류의 무기가 날아들고 있다”며 “우리 군대는 마리우폴에서 위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적군의 규모가 우리보다 크다”고 말했다고 19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마리우폴에 주검들이 길거리에 방치돼 있고, 주민들이 음식과 물을 배급받고 있다고 전했다. 공격이 계속되고 있어서, 앞서 폭격을 당한 마리우폴 극장에서의 구조 작업도 애를 먹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 16일 어린이와 여성 등 최소 수백명의 민간인이 대피하고 있던 마리우폴의 한 극장에 폭격을 가했다. 민간업체인 ‘맥사 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이 극장 건물 밖의 양쪽 바닥에 “어린이들”이라고 쓴 큰 흰색 글씨가 폭격 이후에도 선명하다. 현재까지 130여명이 구조됐다.
러시아군은 또한 마리우폴 주민을 강제로 러시아로 이동시켜, 강제 노역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19일 성명을 내어 “지난 한 주 동안 주민 수천명이 러시아 영토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보이첸코 시장은 별도의 성명에서 “점령군이 오늘 하고 있는 짓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강제로 사람을 잡아들이는 끔찍한 일을 겪은 나이 든 세대에게 익숙한 일”이라며 “21세기에 사람들이 강제로 다른 나라로 보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한 보좌관은 지난 19일 “마리우폴 장악을 풀어낼 가능성은 없다”고 말해 체념의 신호를 내비쳤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마리우폴을 장악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에 대한 통제력을 대폭 얻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인 미콜라이우에서도 18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50명이 숨졌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처음으로 극초음속 무기를 사용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18일 킨잘 미사일을 사용해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의 촌락인 델랴틴에서 우크라이나군 미사일·항공기용 탄약이 저장된 대규모 지하 시설을 파괴했다”고 19일 발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20일에도 “킨잘 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지역의 코스탼티니우카 정착지 인근에 있는 군 연료 및 윤활유 저장소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또 같은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카스피해에서 칼리브르 크루즈미사일도 함께 발사됐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밝혔다.
유엔은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18일까지 64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84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마리우폴에서만 지금까지 250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시 당국이 밝히는 등, 실제 민간인 피해 규모는 유엔 공식 집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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