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집중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 지역에 마련된 임시 수용시설에 18일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모여 있다. 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됐다.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인 5월9일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과를 낸다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20여일 동안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격렬한 혈투가 예상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 밤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돈바스 전투를 시작했다”며 “상당한 규모의 러시아군이 결집해서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안보위원회 서기도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한스크, 도네츠크, 하르키우 지역의 (약 480㎞) 전선을 따라 점령군들이 우리의 방어망을 뚫으려 시도했다”며 “우리 군이 잘 막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페이스북에 러시아군이 엄청난 장비를 갖고 진입해 왔다며, 루한스크 지역 동부의 도시 크레민나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주택 10여채와 올림픽 훈련장이 파괴됐으며 최소 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뒤 북부에 위치한 수도 키이우 점령을 시도하다가 지난달 말 “1단계 작전을 대부분 이행했다”며 병력을 철수했다. 그러면서 향후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하겠다면서 전력을 결집시킨 뒤 이날 본격 공세에 나선 것이다. 돈바스 지역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인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일부를 통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지역을 완전히 제패한 뒤 다음달 9일께 러시아의 승리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국방부 역시 러시아군이 돈바스 제패를 위해 지금까지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은 더 공격적이고, 더 공공연하며, 더 큰 지상 작전을 위한 조건을 갖춰왔다”며 러시아군이 병력과 야포, 항공 전력을 강화하고, 지휘·통제 체계를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최근 11개 대대전술단을 추가해 돈바스 지역에 76개 대대전술단을 투입한 상태라고 전했다. 1개 대대전술단이 700~800명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5만~6만 병력이 공세에 투입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본격 공세에 맞서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제공을 약속한 무기의 일부가 이날 유럽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공하는 8억달러(약 9868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원조는 155㎜ 곡사포 18문과 포탄 4만발, 러시아제 헬리콥터 11대, 장갑차 200대, ‘자살 드론’ 300대 등이다.
러시아군은 이날도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폭탄과 로켓을 쏟아부었다. 우크라이나군이 최후 저항을 벌이고 있는 아조우스탈 제철소에는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 1천명가량이 대피 중이어서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결사항전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화상 연설에서 “아무리 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그곳(동부)으로 들어오더라도, 우리는 계속 싸워서 지킬 것이고 매일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것은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쟁의 향방은 이제 막 시작된 돈바스 공방전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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