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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 비춰 수술하는 우크라 의사들…전력난 속 비참한 현장

등록 2022-11-29 11:44수정 2022-11-29 19:51

전장과 먼 서부 르비우 병원도 진료 차질 심각
전기 공급이 거의 끊긴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의료진이 어둠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가족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전기 공급이 거의 끊긴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의료진이 어둠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가족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헤르손/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의 암 전문 외과의사 올레 두다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수술을 하던 중 폭발음을 들었다. 몇분 뒤 전기가 끊겼지만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머리에 부착한 헤드램프에 의존해 수술을 이어갔다. 3분 뒤 비상 발전기가 가동되면서 전력 공급이 재개됐지만, 이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두다 박사는 28일 보도된 <에이피>(AP) 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날 수술실의 긴박한 순간을 전하며 “이 운명적 몇분은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병원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벽이 흔들렸고, 공습 경보가 울릴 때마다 병원 내 모든 사람이 지하실로 대피해야 했다. 이날 40건의 수술이 잡혀 있었지만, 10건만 예정대로 끝낼 수 있었다.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집중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이 전력난을 겪는 가운데 병원들도 극심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 러시아군은 남부 헤르손 등에서의 지상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달 초부터 발전소 등 기반 시설 공습에 집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시설의 절반 정도가 손상되면서 전국에 순환 정전이 실시되고 있어, 병원들도 전력난을 피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수도 키이우의 심장연구소는 최근 의사들이 헤드램프와 손전등에 의존해 어린이의 심장 수술을 진행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이 연구소의 보리스 토두로우 소장은 이 영상에서 “기뻐하라, 러시아인들이여. 어린이가 수술대에 누워 수술을 받는 동안 전기가 완전히 나갔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우리는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키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이에 몇분의 (소중한)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남동부 지역에서도 많은 병원들이 손상되면서 의료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남부 자포리자주의 작은 마을 빌냔스크에 있는 병원이 지난주 폭격을 당해 신생아 한 명과 두 명의 의사가 크게 다쳤다. 지난 11일 러시아군이 퇴각한 남부 주요 도시 헤르손의 상황도 심각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지난 일주일 간 헤르손주 30개 마을을 258차례나 폭격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때문에 전기·수도·난방이 거의 끊겼고, 의사들은 저녁만 되면 이동전화와 손전등의 불빛에 의존해 일하고 있다. 헤르손 아동병원의 외과 과장 볼로디미르 말리츄크 박사는 “인공 호흡기를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엑스선 촬영기도 못쓴다”며 “이동형 초음파 검사기 하나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가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피>는 전국 곳곳에서 예정된 수술이 취소되고,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환자의 의료 기록을 확인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괴된 건물에서 다친 사람들을 수색하는 구급대원들도 의존할 수단은 손전등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의 우크라이나 보건 상황이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가장 암울한 상태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한스 클뤼허 세계보건기구 유럽 지역 사무소 소장은 최근 “올 겨울에 우크라이나인 수백만명이 생명을 위협받을 것”이라며 적어도 200만~300만명이 난방이 되는 안전한 거처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호흡기 질환, 코로나19, 폐렴, 독감 위험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러시아군은 이번주엔 대규모 공습을 하고 있지 않지만, 전력 시설 복구는 여전히 쉽지 않다. 국영 전력망 운영회사인 우크레네르고는 이날 성명을 내어 “몇몇 발전소의 발전기들이 가동을 긴급히 중단해야 했다”며 전국에 순환 긴급 정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전력회사인 디테크는 수도 키이우에 대한 전기 공급량을 60% 가량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나머지 공급량도 주요 기반시설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은 이 중 42%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7일 키이우에 눈이 내렸고 기온도 영하 1℃까지 내려간 데 이어 30일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보되면서 난방과 전력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부족 사태는 쉽게 개선되지 못할 전망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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