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에서 지난해 9월 누출된 가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보른홀름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9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이 폭파된 것은 ‘미국의 공작’이라는 미국 탐사보도 언론인의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외교·안보 분야의 탐사보도로 퓰리처상 등을 받은 미국 언론인 시모어 허시(85)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소식통 말을 인용해 8일(현지 시각) 자신의 블로그에 미군 해군 잠수부들이 발트해를 통과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에 폭탄을 장착해 폭파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공작 계획을 직접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해군 잠수부들이 ’발틱 작전 22’(벨톱스 22)라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합동훈련의 은폐 하에 원격작동 폭탄을 설치했고, 3개월 뒤 4개의 노르트스트림 1·2 가스관 중 3개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의회에 보고 의무가 없는 파나마시티 주둔 미 해군의 ’다이빙구조센터’의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동원돼, C-4 폭탄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 12월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미군 합동참모본부, 중앙정보국(CIA) 등 관계자들을 소집한 회의들에서 당시 고조되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다가 이 공작이 결정됐다고 허시는 주장했다. 그 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부(CIA) 국장이 해군 잠수부가 포함된 공작 계획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허시는 “이 과정을 직접 알고 있는 소식통에 따르면, 참가자들에게 명확해진 것은 설리번 보좌관이 이 그룹에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 계획 작성을 의도했고, 그가 대통령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공작팀은 지난해 초 “가스관을 날려버릴 방법이 있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2월7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더는 노르트스트림2는 없을 것이다”며 “우리는 그것을 끝장낼 것이다”고 말했다. 같은 해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노르웨이 해군의 도움을 받은 공작팀은 수심이 낮아 공작이 수월한 발트해의 덴마크 섬인 보른홀름 인근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목표물로 정했다. 나토 합동해군훈련인 ’발틱 작전 22’가 열리는 6월에 잠수부들은 48시간 타이머가 장착된 C-4 폭탄을 설치했다. 하지만, 막판에 백악관으로부터 폭파 연기 지령이 내려왔다. 3개월 뒤인 9월28일 노르웨이의 P8 초계기가 수중음파탐지기 부표를 공작지점에 투하하고 작동시켜서 1시간 뒤에 폭파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허시는 미 행정부 인사들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유럽의 러시아 의존을 심화하는 한편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프로젝트로 보던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공작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나토는 이 사건을 “사보타주 행위”라고 규정했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조사관들도 가스관 파열은 “사보타주의 결과”라고 결론 내렸으나, 누구의 책임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서방 쪽에서는 러시아의 자작극, 러시아 쪽에서는 영국의 공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개런 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노르트스트림 폭파에 관여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마리아 자하로파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자신의 텔레그램 포스트에 “미국이 해명해야 한다”며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가 폭파에 관여됐다는 믿음을 거듭 표명해왔다고 적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도 일했던 허시는 베트남전 때 미군의 미라이 양민촌 학살 등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탐사보도 언론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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